투자은행(IB)업계 강자로 여겨졌던 우리투자증권의 허술한 리스크 관리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유상증자를 주관한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는가 하면,기업어음(CP) 발행을 주관한 LIG건설이 열흘 만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성과를 올리는 데만 급급한 채 투자자 보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리스크 심사 없이 CP 판매

우리투자증권은 LIG건설이 발행한 CP 42억원어치를 지난달 11일 투자자에게 판매했다. 금리는 연 8.6%로 월등히 높았다. CP를 판매한 열흘 뒤인 지난달 21일 LIG건설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 투자자는 우리투자증권이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을 알고도 CP를 판매했다며 53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금융감독원에서도 불완전판매가 있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특별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LIG건설이 발행한 CP는 1836억원에 이른다. 이 중 1300억원을 우리투자증권이 중개했다. 같은 계열사인 LIG투자증권이 30억원어치만 중개한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우리투자증권은 "전신이 LG투자증권이다보니 LIG건설의 CP를 원하는 수요가 많아 이를 중개했을 뿐"이라며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증권사들의 설명은 다르다. 한 관계자는 "재벌 계열사가 연 8%대의 고금리로 CP를 판매하는 것 자체가 의심스러워 CP 판매를 주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의 리스크 관리가 그만큼 허술했다는 얘기다. 우리투자증권은 LIG건설 CP를 판매할 당시 리스크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CP는 보통 판매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리스크 검증과정을 거친다. 우리투자증권 신탁부서 관계자는 "CP는 신용평가사들이 매겨놓은 신용등급이 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투자자들에게 위험을 고지하는게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동양종금증권과 동부증권 등 일부 증권사들은 신용등급과 별도로 자체적인 '크레디트유니버스'(투자가능 회사채 리스트) 시스템을 두고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예컨대 신용등급이 높아도 자체 평가 결과 리스크가 높다고 판단돼 유니버스에서 빠진 채권은 판매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IB 신뢰도 추락

일부 투자자들이 판매사인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 이번 사태는 법정분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과거 유상증자를 주관했던 기업들의 부실 사례가 부각되고 있어 명성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투자증권이 지난 1월 유상증자를 공동 주관한 씨모텍은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매매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상장이 폐지된 케드콤과 케이엠에이치의 일반공모 증자를 담당하는 등 대형 증권사 중 부실기업 증자 주관 사례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계 증권사의 IB 담당 임원은 "투자자들은 주관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투자를 하기 때문에 IB에게 위험분석 능력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라며 "주관 기업들의 잦은 부실은 신뢰도 하락에 치명적"이라고 귀띔했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블록딜 실패로 한전KPS 주식 224만8000주(지분율 4.99%)를 떠안았다. 인수가격은 6만6940원이었다. 이날 종가는 3만8200원으로 42.9% 하락했다. 그만큼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우리투자증권이 1등주의를 앞세워 성과위주의 영업에 치중하다보니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강지연/이상열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