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보기술(IT) 흐름을 주도하는 기업을 셋만 꼽으라면 아이폰 · 아이패드로 세상을 뒤엎은 애플 외에 구글과 페이스북을 들 수 있다. 구글은 개방형 플랫폼 안드로이드를 내놓아 아이폰에 대항하는 안드로이드 연합군을 이끌고 있다. 페이스북은 이용자가 6억명이 넘는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기업이다.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38)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26)는 꽤 닮았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해 20대에 창업했고 현재 최고경영자(CEO)라는 사실부터 그렇다. 성장 과정도 비슷하다. 두 사람 모두 컴퓨터와 컴퓨터 잡지가 나뒹구는 집에서 컸다. 초등학생 시절 페이지는 워드로 숙제를 했고,저커버그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한국에는 초등학생 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20대 창업가가 없을까. 있다. 얼마든지 있다. 인터넷 인프라를 놓고 봐도 미국에 뒤질 게 없다. 인터넷 평균속도가 초당 17메가비트로 미국의 4배나 된다. 그런데도 페이지 · 저커버그 같은 기업인이 나오지 않자 "키우겠다"는 말도 나오고 "우린 안 된다"는 한탄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와는 딴판으로 국내 IT업계는 지금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프로그램을 개발할 능력 있는 경력 엔지니어가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폰 · 아이패드가 나오면서 모바일 디바이스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대기업은 중소기업에서,중소기업은 벤처기업에서 인력을 뽑아가면서 연쇄적으로 구인난을 겪고 있다.

간신히 필요한 인력을 채운 기업이라고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모바일 인력을 찾다 포기하고 웹 인력을 채용하는가 하면 학원에서 컴퓨터를 배운 인문계 졸업자들을 뽑기도 한다. 페이지 · 저커버그 같은 기업인을 키워내지 못하는 판국에 인력난까지 겹쳤다. 최근의 IT 인력난은 고질적인 이공계 기피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해결방안을 찾기도 쉽지 않다.

모바일 혁명,소셜 혁명이 시작된 지금 일손이 부족한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전문가들은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쏟아져 나오고 앱(애플리케이션 · 응용 프로그램) 장터인 앱스토어가 활성화되면서 판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하드웨어 싸움이 소프트웨어 싸움으로 바뀌고,누구든지 글로벌 오픈마켓을 활용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패러다임이 바뀌다 보니 인력 수급에 큰 차질이 생겼다. 소프트웨어를 등한시하고 소프트웨어 인력을 양성하지 않은 결과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무시했는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에 모든 게 담겨 있다. 컴퓨터공학과 정원 미달은 다 아는 얘기다.

기업들은 일단 여기저기서 인력을 뽑아다 메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봉책이다. 소프트웨어 경쟁에서 이기려면 소프트웨어 인력에 대한 대우가 달라져야 하고,기업문화와 제도가 달라져야 한다. IT 업계는 이번 인력난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거라고 보고 있다. 획기적인 발상 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

노상범 홍익세상 대표가 7일 블로그에 올린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귀환하라'는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치킨집 하는 백 과장,찜질방에서 빙수 파는 오 선임,해장국 팔고 있는 김 차장,공예가구 만드는 김 부장,즉시 돌아오라.…모바일,소셜 혁명에 그대의 피가 필요하다. …업계를 떠난 고급 개발자들을 돌아오게 하소서.'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