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서울 수송동 국세청사를 찾아갔다. 공정사회 추진회의를 주재하기 위해서였다. 공평과세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현장 방문이었다.

따뜻한 격려의 말을 기대했던 직원들에게 이 대통령은 비수를 꽂았다. "대한민국에서 기관장이 감옥에 가장 많이 간 데가 농협중앙회와 국세청이다. " 국세청의 치부를 들춰낸 대통령의 직선적 발언에 직원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일침이 아니더라도 국세청은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세금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최근 조세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성실납세의향이 있는 사람은 52.2%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39.9%),'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내고 싶지 않다'(7.7%)는 응답이었다.

세금과 죽음의 공통점은 인간이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어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지만 세금없이는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다. 세금을 많이 내는 개인이나 기업이 곧 애국자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존중하는 풍토가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모범 납세자를 포상하는 '납세자의 날'(3월3일)은 전신인 '조세의 날'까지 합치면 올해로 45년째 행사를 치렀다. 그러나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소득 전문직종의 탈세,일부 기업주들의 편법적인 상속 · 증여,잊을 만하면 터지는 세무공무원 비리 등이 납세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는 이유일 게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세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세금에 관한 비과학적 논쟁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문제다. 부자감세나 세금폭탄 같은 현혹적 용어를 만들어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부자감세만 해도 그렇다. 이 말은 경제적이고 과학적인 세금의 영역을 정치적인 프레임으로만 재단하게 만드는 요술방망이가 돼 버렸다. 소득세를 기준으로 보면 감세는 불가피하게 중상층 근로자에게 맞춰질 수밖에 없다. 전체 근로자 중 40%는 절대 소득 수준이 낮거나 공제혜택을 받아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세는 경기동향이나 재정상황을 감안해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경제적 논쟁으로 봐야 한다. 부자감세라는 프레임으로 왜곡해선 안될 일이다.

세금에 관한 인식 부족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액납세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종합소득세의 70%는 소득이 높은 상위 근로자 1.5%가 내고 있다. 그런데도 일반 국민들은 국가재정에 대한 이들의 기여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세금을 낭비하는 중앙정부나 지자체에 대한 견제 장치가 작동되지 않는 것도 국민들이 세금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국세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사람을 평가하고 존경하는 사회 풍토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정말 그런 사회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세금에 대한 조기 교육을 대대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성인이 된 후엔 늦다. 그나마 국세청이 초 · 중 · 고등학교를 찾아가 세금 교육을 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사회나 경제 교과서에도 세금은 납세의무 정도로만 간단하게 기술돼 있다. 생각나는 세금을 들어보라고 하면 전기세나 수도세를 대는 대학생이 부지기수인 게 현실이기도 하다.

세금은 우리가 누리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대가다. 국민은 세금을 통해 정부 활동에 참여한다. 좋은 서비스가 골고루 퍼지도록 많은 세금을 내는 사람은 그만큼 사회에 기여하고 나눔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성실납세자와 고액납세자가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하는 충분한 이유다. 대통령의 국세청 방문이 헛되지 않으려면 세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고광철 논설위원·경제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