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국회가 시중의 여느 악성 이익단체와 다를 게 없다. 국회의원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바로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려고 말도 안되는 개정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을 필두로 18명의 여야 의원들이 벌금형에 따른 당선무효 규정을 개악한 공직선거법 개정법안을 내놓은 것은 그런 점에서 압권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부인의 벌금형이 500만원으로 확정된 김 의원을 비롯해 비슷한 처벌을 받은 다른 여야 의원들이 대부분 구제받아 내년 총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국회가 이렇게까지 '철면피'가 되고 있다니 참으로 암담하다.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잇속부터 챙기고 보자는 식으로 엉터리 법안을 만들어 내는 사례가 꼬리를 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여론의 반발에 무산됐던 정치자금법 개정안만 해도 그렇다. 이 법은 의원들이 이익단체의 후원금을 쉽게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청목회 입법 로비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6명의 의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 했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심지어 여야 의원들은 청목회 수사에 대한 보복으로 대검찰청 중수부 폐지를 골자로 한 사법개혁안을 추진하려다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국회가 특정 계층과 이익단체의 로비에 마냥 휘둘리고 있는 것은 이미 놀라운 일도 아니다. 당장 상장회사에 준법지원인을 두도록 한 상법개정안이 지난달 11일 은밀히 국회를 통과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특종 보도를 통해 개정법의 부당성을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면 청와대조차 모르고 넘어갔을 게 틀림없다.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의 성실 납세를 독려하는 세무검증제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가 비판이 일자 어제 겨우 위원회 의결을 거친 것도 마찬가지다. 국회가 로비에 말려 맥을 추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다. 아니 로비가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국가 이익을 생각하기는커녕 지역 이기주의에 매몰돼가고 있는 현실도 큰 걱정거리다. 동남권 신공항은 정부가 경제성이 없어 백지화한 것이다. 그런데 여야 할 것 없이 지방이 지역구인 의원들이 들고일어나 이번에는 수도권 규제완화에 훼방을 놓겠다고 나서는 것은 스스로 정치를 3류,4류로 만드는 결과밖에 안된다.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의원들이 조문을 알고 있기나 한지 궁금하다. 최근 국회를 신속하게 통과한 법률들은 의원 자신들의 연금을 올리거나, 가족수당을 올리거나, 세비를 올리거나, 청목회 등 특정 집단에 대가 있는 이익을 주거나, 법조출신 의원 등 자신이 속한 직역집단에 특혜를 보장하는 법률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법률들은 여야 의원들이 국민들에게 주먹 활극을 그럴싸하게 보여주는 시간에도 뒷방에서 은밀하고 신속하게 처리되는 것이 다반사다.

여기에 전 · 월세상한제 이자상한제 무상복지 등 반시장적이며 내일은 없다는 식의 포퓰리즘 입법을 쏟아내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국회의원들이 입법권을 심각하게 남용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 대부분의 생각이다.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명박 정부는 정치권보다 더한 포퓰리즘 정책만 쏟아낼 뿐 국회 개혁과 정치 개혁, 사회 개혁에는 아예 관심도 없다는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