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9일 오전 6시10분.존 켈리 미국 해병대 중장은 워싱턴 자택에서 아들의 전사(戰死) 통보를 받았다. 당시 29세였던 아들 로버트 켈리 해병대 소위는 아프가니스탄 전투에서 지뢰를 밟고 즉사했다. 켈리 중장은 아들이 전사한 아픔보다 아들과 같은 희생에 무관심해져가는 미 국민들에게 화가 났고 슬펐다.

비슷한 무렵 한 설문조사 결과 아프간전을 관심사라고 꼽은 유권자들은 2%를 밑돌았다. 미국의 전체 인구 가운데 군인과 군인가족만 1% 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켈리는 기가 막혔다.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국민들이 더 이상 우리의 존재를 모르거나,우리가 국민들을 애써 외면할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민주당의 아이크 스켈턴 전 의원은 "우리를 지켜주는 이들이 우리와 심리적 단절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여론을 선도해야 할 미국 지도자들이 직무를 방기한 탓일까. 그 반대다. 미군 최고 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설 때마다 장병들의 복무와 희생을 부각시킨다. 미국은 모병제로 직업군인 체제를 갖고 있다. 군사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군의 사기를 고려하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주목되는 리더십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새해 대(對)국민 국정연설문에서 여섯 문장을 할애해 아프간전을 언급하고 장병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그의 연설문에서 종결어 '신의 가호를(God bless you)' 다음으로 빈번히 사용하는 표현이 '복무 중인(in uniform) 장병들'이다. 그는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시즌마다 국내에서 근무하고 해외에 파병된 미군들과 가족들,그리고 전몰자들의 희생에 감사를 전한다.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는 남편 이상이다. 그는 군인가족 지원을 위한 전국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3500여명의 해병대와 해군장병,가족들이 모인 행사장에서 "진심으로 군인가족을 돕는 것은 미국의 비전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이 장병 여러분과 가족들의 소중한 복무를 이해하고 감사하도록 이끄는 것은 내 임무(mission)"라며 "여러분의 목소리가 정부와 이웃들에게 반영되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가 이처럼 배려해도 미군가족들은 여전히 서운함과 소외감을 호소한다.

한국은 준(準)전시 상태다. 북한의 기습 군사도발에 늘 시달리고 있다. 천안함 폭침 도발 1주년인 지난 26일 이명박 대통령은 추모식에 참석했다. 유가족들에게 "세월이 가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에선 징병제인 의무복무 시스템 탓인지 장병들의 노고와 숭고한 희생,가족들의 걱정과 아픔은 천안함 폭침 같은 도발이 발생해야 특별히 기억되는 측면이 많다. 이들이 평소 숨쉬고 살아가면서도 고마움이 인식되지 않는 '공기'의 처지와 같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 대통령의 공언이 허언이 되지 않길 바라는 까닭이다. 리더로서 고귀한 희생이 국민들의 머리와 가슴에 어떻게,얼마나 오래 기억되도록 이끄느냐가 강군과 국방의 초석이다. '천안함 46용사' 중 한 명인 고 민평기 상사의 부모는 기증한 기관총으로 아들을 영원히 해군에 복무시켰다.

이 대통령은 진보 · 보수를 떠나 후대 정권이 들어선 다음날 아침에 "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배은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영속적인 보훈의 리더십을 다지는 게 그에게 남은 중대 임무다.

워싱턴=김홍열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