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 거버넌스(지배구조)는 진화와 퇴보를 거듭했다. 정부가 과학기술 정책에 체중을 싣기 시작한 건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 KIST)를 설립하면서부터다. 경제성장을 위해 공업화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월남파병을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세운 게 KIST다.

박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1966) 과학기술처(1967) 대덕연구단지(1970) 한국과학재단(1977) 등을 차례로 설립,과학기술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전두환 정권도 과학기술 육성에 적극적이었다. 난립하던 기관을 통폐합하고 예산도 늘렸다. 16개에 달하던 정부출연연구소를 9개로 재정비하고 과학기술처에 운영 및 감독권을 줬다. 기술진흥확대회의(1982)와 기술진흥심의회의(1984)를 통해 과학기술 진흥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소수점 아래에 머물던 국내총생산 대비 과학기술 예산 비중도 1981년 0.62%에서 1985년 1.5%로 끌어올렸다.

노태우 정권은 1991년 청와대 비서실 편제에서 과학기술 담당비서관을 없애고 대신 비상설 자문기관인 과학기술자문회의를 설치했다.

이번에 부활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김대중 정권이 1998년 설립했던 범부처 종합기구(비상설)다. 당시 과학기술 정책의 기본방향과 부처 간 역할 조정,예산배분과 우선순위 심의 등을 맡았다. 과학기술처에서 격상된 과학기술부 장관이 국과위 간사를 맡아 정책을 조정했다. 국과위는 프런티어사업 창의연구사업 우주개발사업 등 대형 국책사업을 벌였지만 위상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노무현 정권은 '제2 과학기술입국'을 국정과제로 내걸어 과학기술계의 기대를 받았다. 경제성장의 한계를 과학기술로 극복하겠다는 의지도 천명했다. 정권 출범 초기 정보과학기술비서관을 신설하고 과기부 산하에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설치했다. 과기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켰다. 과기혁신본부는 국가 R&D 예산의 조정 · 배분권을 가졌다. 28일 상설기구로 출범하는 국과위의 기능과 닮았다. 과기부 차관과 과기혁신본부장 임무가 중복되고 과기부총리가 산업자원부 정통부 등 관련 부처를 제어하지 못해 정책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은 교육부와 과기부를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폐합했다. 산업자원부의 산업 및 에너지정책,정보통신부의 IT 산업정책,과기부의 산업기술 R&D정책을 총괄하는 지식경제부를 신설했다. 하지만 과기혁신본부의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한 것은 대표적인 역행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특별취재팀

남궁 덕 중기과학부장(팀장),이건호(사회부) · 손성태(증권부)차장,주용석 · 이정호 · 김일규(경제부),이해성 · 정소람(중기과학부),남윤선(정치부),심은지(건설부동산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