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이 글로벌 휴대폰 경쟁 격화로 유동성 위기를 맞으면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것은 2007년이었다. 20년 전 직원 6명으로 출발한 팬택이 오로지 기술 하나로 국내 첫 무선호출기와 CDMA 휴대폰을 내놓으며 대성공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다. 지방대 출신에 기댈 만한 연줄도 없어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회사에는 회장이 없다)이다. 더구나 스마트폰 붐이 불면서 팬택은 재기불능으로 보였다.

팬택은 어제 경기도 김포공장에서 주주총회를 열었다. 작년 결산 결과 국내외에서 1100만대의 휴대폰을 팔아 14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애플 삼성전자 등 글로벌 강자들과 맞붙은 스마트폰에선 시리우스 베가 등의 브랜드로 일본 시장까지 진출했고 국내에서만 100만대 넘게 팔아 점유율 2위에 올랐다. 올 연말엔 워크아웃에서 졸업할 예정이다. 채권단은 박 부회장에게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까지 주며 경의를 표했다.

우리가 팬택의 사례에 주목하는 것은 신생기업이 성장 · 발전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병엽 부회장은 자신의 지분을 포기한 채 휴일도 없이 일하며 기술개발에 전념했다. 기업가의 탄생이었다. 기업가 정신이 전제되지 않고선 그 어떤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책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일본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어려서 결핵을 앓은 약골인 데다 지방 이류대를 나왔다. 27세에 교세라를 창업했지만 대기업 납품을 뚫을 연줄도 능력도 없었다. 그는 제품을 가방에 넣고 해외로 뛰었다. 미국 IBM 컴퓨터가 세계를 휩쓸 당시 일본 대기업들은 IBM 제품을 뜯어보고 깜짝 놀랐다. 세라믹 부품이 이름도 생소한 일본 중소기업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머리를 숙이고 이나모리를 찾아왔다.

최근 대 · 중소기업 상생,동반성장과 이익공유제 같은 구호들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대기업들도 협력 중소기업들을 착취한다는 소리만큼은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성엔지니어링은 삼성전자와의 거래가 끊어지면서 맞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오히려 글로벌 부품사로 크는 원점으로 삼았다. 세계 카지노 모니터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코텍은 기술 하나로 연간 1억달러를 수출한다. 쇠를 깎는 절삭공구 업체 와이지원은 품질 덕에 기계의 메카인 독일에서 더 알아준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우물을 팠고 최고 수준의 기술과 품질을 토대로 지연도 학연도 정부 지원도 필요없는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걸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정부와 대기업에 기댔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업은 누가 키워주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팬택은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