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로부터 신뢰를 회복해야 정상화될 수 있다. "(김세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국무총리실 소속이어서 고용부가 정상화 문제에 개입하기 어렵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

파행 운영되고 있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정상화 문제를 둘러싸고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고용부가 서로 '핑퐁'을 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국책연구소를 총괄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연구원 내부사정에는 다소 어두운 편이다. 고용부는 노동연구원에 대한 지휘감독권은 없지만 노사관계 및 고용정책 연구를 위탁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고용부가 연구원 사태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고용부는 여전히 연구원 정상화 문제는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단체협약 해지에 따른 파업과 극심한 내부갈등을 겪은 노동연구원은 1년4개월째 원장이 공석상태로 있다. 2009년엔 노동연구원 전체 연구용역비 80억원 중 88.8%(71억원)를 고용부로부터 수주했지만,지난해에는 한건도 따내지 못했다. 다른 연구기관,대학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공개경쟁을 벌인 결과라고 고용부는 설명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선정과정에서 뭔가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돈다.

연구원의 파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 9개 사업은 다른 기관으로 이관됐고 연구위원들의 임금은 30% 정도 삭감됐다. 이쯤 되면 '노동연구원 죽이기' 수순이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지난해 고용부의 용역을 한건도 따내지 못한 노동연구원은 내달 있을 국책연구기관 경영평가에서 꼴찌를 면키 어렵게 됐다. 그 이전에도 극심한 노사갈등으로 2년 연속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 이는 정부가 연구원을 공중 분해시킬 사유에 해당된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 가운데 노동연구원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정상화된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다보니 노동연구원 직원들은 조직이 없어지는지,살아남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김 이사장의 입을 빌어 △고용계약 및 연봉제 도입 △인력 구조조정 △국책연구기관으로서의 신뢰회복 등 세 가지를 충족시키면 노동연구원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동안 노동연구원 조직원들의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결국 정상화방안을 받아들였다. 고용계약제와 연봉제를 도입,탄력적인 인력운영의 틀을 마련했고 11명으로부터 희망퇴직을 받아내 인력구조조정 문제도 해소했다.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외부 강의와 언론출연,회의자문 등 대외활동을 할 경우 사전승인을 거치도록 내부방침을 정했다. 그런데 또다시 "신뢰회복이 되지 않았다"며 제동을 건 것이다.

이런 정부의 태도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노동연구원은 우리 사회의 귀중한 자산이다. 국제적으로도 훌륭한 싱크탱크로 인정받아온 기관이다. 노동연구원이 잘못한 점이 있다면 철저히 개혁하도록 정정당당하게 지시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신뢰회복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구체적인 액션 가이드라인도 제시하는 게 맞다.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자세는 글로벌시대에 걸맞지도 않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도 못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해결의 가닥을 잡아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