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업계가 삼성의 전격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22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태블릿PC '갤럭시탭10.1'을 공개하면서다. 이 제품은 2월 스페인에서 열린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1'에서 처음 공개됐다. 당시 본체 두께는 10.9㎜였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제품의 두께는 8.6㎜로 지금까지 나온 태블릿PC 가운데 가장 얇았다. 한 달여 만에 두께를 2.3㎜ 줄인 것.그러고선 발표회장에서 "갤럭시탭10.1은 지금까지 나온 태블릿 가운데 가장 얇다"고 선언했다.

◆누가 더 혁신적인가

삼성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제품을 혁신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달 초 발표된 아이패드2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애플은 "두께 8.8㎜의 가장 얇은 태블릿"이라고 강조하며 삼성 엔지니어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애플의 진격에 위기감을 느낀 삼성은 즉각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 개발에 들어가 불과 보름여 만에 '세계에서 가장 얇은'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특유의 '스피드 경영'에 세계 최고의 하드웨어 경쟁력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평이다.

이와 관련,미국의 IT전문 매체인 엔가젯은 "아이패드2 출시 행사를 가장 심각하게 지켜본 업체는 바로 삼성"이라며 "삼성 경영진은 애플이 아이패드 두께를 더 얇게 만든 능력에 인상을 받았고 곧바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얇은 새로운 갤럭시탭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허니콤(안드로이드 3.0) OS를 그대로 얹지 않고 터치위즈UX(삼성의 자체 사용자 환경)를 채택한 것도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전방위 맞대결 펼쳐

업계는 이번 갤럭시탭 발표 행사로 삼성전자와 애플의 맞싸움이 절정에 이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아이패드2를 의식해 갤럭시탭의 가격(와이파이 모델 기준)도 크게 끌어내렸다. 갤럭시탭8.9는 16GB(469달러),32GB(569달러) 모두 동급 '아이패드2'에 비해 각각 30달러씩 싸며 갤럭시탭 10.1은 아이패드2와 똑같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도 삼성의 추격전은 속도를 내고 있다. 2009년 9월에는 애플의 애플리케이션(앱 · 응용프로그램) 장터인 앱스토어를 겨냥해 삼성앱스를 출시한 데 이어 지난달 말에는 애플의 콘텐츠,소프트웨어 관리 프로그램인 아이튠즈에 대항해 '삼성키스(Kies) 2.0'도 출시했다.

삼성과 애플은 또 대부분의 스마트 기기에서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삼성은 지난달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을 겨냥해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 2.2(프로요) 버전을 탑재한 '갤럭시플레이어'도 내놨다. 애플이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로 이어지는 모바일 제품군을 갖춘 것에 대항해 '갤럭시플레이어-갤럭시S-갤럭시탭'의 종합세트를 완성한 셈이다.

◆애플의 독설-삼성의 침묵

양사의 최근 경쟁구도는 자존심 싸움으로도 치닫고 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지난해 6월 아이폰4를 발표하며 수차례에 걸쳐 "이 행성(planet)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이라고 언급했다. 아이폰4의 두께는 9.3㎜다. 앞서 삼성전자가 두께 9.9㎜의 갤럭시S를 발표하며 가장 얇은 스마트폰이라고 강조한 것에 대한 반격이었다.

잡스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애플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삼성전자 첫 태블릿PC '갤럭시탭 7인치' 제품을 겨냥해 "(미국에) 도착 즉시 사망(Death on Arrival)"이라고 말한 데 이어 지난달 아이패드2 발표회에서는 "삼성 모토로라 등은 카피캣(흉내쟁이)"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잡스의 연이은 험담에 삼성전자는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애플이 반도체 사업의 큰 고객사였기에 언급 자체를 금기시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전자회사를 지향하는 삼성이 절치부심의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는 충분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잡스의 독설은 글로벌 스마트폰,태블릿 시장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삼성전자에 대한 견제구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비하적 표현에 가깝지만 상대를 그만큼 의식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한 셈이다. 잡스는 아이폰4의 안테나 수신 불량 이슈가 제기됐을 때 미국 기자들에게 "애플이 한국 회사면 좋겠느냐"는 말까지 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