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정치자금 후원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기업과 단체가 정당에 1억5000만원까지 정치자금을 후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선관위를 통해 국회로 제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정치자금 모금을 현실화하자는 취지지만 과거의 금권정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우선 기업의 정치자금 후원을 허용할 경우 대선과 총선 등에서 기업의 정치권 눈치보기가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이동에 따라 부침이 심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특정 정당에 정치후원을 할 수밖에 없고,줄을 잘못 설 경우 보이지 않는 정치적 외압에 휘둘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원금이 정부 정책에 영향을 행사하는 집권당에 몰리는 현상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선관위가 기업의 후원금을 정치후원금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로비자금으로 봐야 한다"며 "당의 입장에선 소액을 낸 기업보단 최대 한도액을 낸 기업 뒤를 봐주지 않겠느냐.차라리 로비를 활성화하면 지출의 투명성 때문에 뒤를 봐줄 순 없다"고 말했다.

특히 대기업은 한 기업의 연간 후원 한도가 1억5000만원이라 할지라도 계열사를 통한 후원금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삼성그룹은 계열사가 71개(공정거래위원회 집계 기준)로 최대 106억5000만원까지 후원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금권정치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기업의 후원금 문제는 사측과 노조 간 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도 민감하다. 대체적으로 보수정당 지지성향이 강한 사측과 진보정당 지지성향이 강한 노조 측이 후원금 문제로 대립,노사관계의 또 다른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개정안의 당사자인 기업들도 선관위의 개정 의견에 부정적이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기업들의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기업 입장에서는 성의 표시를 안 할 수 없게 된다"며 "국민 입장에서도 기업의 상당수가 정치자금 지출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면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개정안보다 기업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을 가져와 기업,시민단체들과 토론을 거치고 그 후 입법화를 고려하는 게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이다. 정개특위 소속 의원은 "깨끗한 정치를 위해 정치자금을 양성화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구동회/송형석/허란 기자 kugi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