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제한 송전이 시작된 14일 오전 6시50분께 도쿄 시내 우에노역 앞의 호텔을 나섰다. 자동차,화학 관련 제조공장이 몰려 있는 도쿄 인근 이바라키현의 히타치(日立)시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전철로 갈아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전날 밤 기차 출발지인 JR 우에노역 바로 앞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오전 7시께 열차를 타면 늦어도 11시 전까지 도착할 것으로 판단했다. 평소라면 전철로 2시간 걸리기 때문에 아무리 돌아가도 4시간이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침은 '에키벤(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사먹기로 했다.

수도권 외곽으로 가는 열차들이 많이 출발하는 우에노역에 들어서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전력 제한 송전으로 신칸센은 중단된 노선이 많고,시내 전철도 평소보다 편수를 대폭 줄여 운영하고 있으니 참고하라"는 내용이었다. 목적지인 이바라키현 히타치시를 가기 위해선 '조반선'으로 미토(水戶)시까지 간 뒤 택시를 갈아타고 가는 게 최선의 방안이었다.

우에노역에서 닛포리까지 간 뒤 '아비코(我孫子)'행 기차를 타고 그곳에서 미토행으로 바꿔 타야 한다. 7시20분 기차를 탔다. 다행히 닛포리까지는 별 탈 없이 갔다.

문제는 닛포리부터였다. 아비코행 열차가 20분 이상 지연돼 들어왔다. 아비코행 기차를 타고 안심을 했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한 20분 달리더니 '마쓰도(松戶)' 역에서 기차가 멈춰버렸다. "승객들은 모두 내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지진 여파로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일본인 승객들을 따라 내렸다. 선로 옆에서 10분 정도 기다리다 아무래도 역사에서 확인하는 게 좋을 듯싶어 역장실로 가서 문의했다. 미토까지 가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역무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겠다며,"아무래도 당분간은 기차를 타고 미토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만 답했다.

고민 끝에 버스나 택시로 가기로 하고 기차표를 환불받은 뒤 역사를 빠져나왔다. 벌써 9시가 넘었다. 마쓰도역 앞 시외버스와 택시 정류장에는 이미 수백명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일부 버스 정류장에는 운행을 중단한다는 안내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미토시로 가는 버스편은 없었다. 역 앞에 있는 파출소에 가서 미토시까지 육로로 가고 싶은데,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경찰관 역시 그쪽 지역은 지진 여파로 도로가 군데군데 끊긴 곳이 많아 버스로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람이 많은 택시 정류장을 벗어나 도로에서 바로 택시를 잡으려고 10여분을 걸어 나갔다. 하지만 20분가량을 기다려도 빈 택시는 눈에 띄지 않았다. 대안이 없어 다시 마쓰도역으로 갔다.

역 정문 쪽에 버거킹 점포가 보였다. 반가웠다. 매장 앞에도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수도권의 교통대란으로 식자재 조달이 원활하지 않아 일부 메뉴는 판매하지 못하니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더블 치즈버거를 주문했다. 점원은 햄버거는 없고 치킨버거 두 종류만 가능하다고 답했다. 10여종의 메뉴 중 취급 품목은 단 두 종.치킨버거와 콜라로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니 벌써 10시.동료 기자와 헤어졌다. 한 사람은 일단 택시 줄을 기다려 목적지로 가고,기자는 다시 도쿄 시내로 돌아가기로 했다. 30분 거리인 도쿄 시내 신주쿠까지 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전철을 세번이나 갈아타고 3시간 이상 걸렸다. 열차 운행이 지연돼 지나가는 역마다 승객들이 넘쳐났다. 이동통신도 여의치 않아 PC방을 찾아 인터넷을 연결하니 정오가 다 돼갔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과 편리함을 자랑하는 일본의 수도권 전철망도 대지진 앞에선 무기력했다.

도쿄=최인한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