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탄은 이정(1541~1622)은 세종대왕의 현손으로 이른바 왕족 화가였다. 시와 서화에 뛰어났으며 묵죽(墨竹)그림으로 이름을 떨쳤다. 검은 질감이 돋보이는 그의 대나무 그림은 국제 무대에서도 뒤지지 않을 만큼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조선시대 한국화의 흐름은 그를 시작으로 현재 심사정,공재 윤두서,겸재 정선,단원 김홍도,호생관 최북,초원 이수민,자하 신위 등을 거쳐 오원 장승업으로 이어진다.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은 조선 중기 이후에 활동한 한국 화가 33명의 작품을 모은 '옛 그림의 향수'전(15~28일)을 연다. 박주환 동산방화랑 회장의 소장품과 고미술 애호가들에게 빌려온 이정의 대표작 '니금세죽(泥金細竹)',얼마 전 보물(제1625-2호)로 지정된 황기로의 글씨,김홍도의 게 그림,자화상으로 유명한 윤두서의 말 그림,강세황의 산수도 등 46점이 전시된다. 조선 성리학에 기초한 진경산수화의 탄생 과정과 미술사적 의미까지 조명할 수 있는 기회다.

겸재의 그림으로는 북악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부아암(負兒岩)',칼날 같은 절벽을 뒤로하고 강을 바라보는 선비를 묘사한 '독좌관수(獨座觀水 · 사진)' 등 산수화 3점이 나온다. '부아암'은 거장의 중량감이 느껴지는 대담한 암벽 배치,산 아래 깔린 황토색의 묘미,바위 윗면을 과감하게 잘라낸 현대적 감각 등 겸재의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단원 김홍도의 '어해도'(魚蟹圖)는 등을 맞댄 게 두 마리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작품.1938년 경매에 나온 이 작품은 다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회자정리의 철학을 잘 녹여냈다.

풍속화에서 느끼지 못한 단원의 또 다른 화법이 싱그럽다.

탄은의 '니금세죽(泥金細竹)'은 제목 그대로 니금을 이용해 대나무를 그린 것이다.

장승업의 작품 중에는 화조(花鳥)와 기명절지(그릇과 각종 화훼류)를 그린 병풍이 출품됐고 심사정의 작품으로는 냇가의 장끼와 까투리를 그린 그림,산수도 등이 걸린다.

추사 김정희가 부채 위에 쓴 글씨와 황기로의 흘림 글씨체 초서 작품도 눈길을 끈다. (02)733-587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