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월17일 여수국가산업단지 정전 사고에 대한 조사 결과를 내놨다. 사고 발생 51일 만이다. 그러나 정전 사고를 둘러싸고 전력을 공급하는 한국전력과 GS칼텍스 등 정전 피해업체 간 최대 쟁점이었던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지 않았다. 일부 정전 원인에 대해서는 "단기간에 파악이 곤란하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한전과 피해업체 간 책임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이 1차 원인 제공
10일 정부 합동조사단에 따르면 여수산단 정전은 한전 여수화력 변전소 내 전기설비 고장에서 비롯됐다. 고장 원인은 지상 송전선로와 땅 속 송전선로를 잇는 종단접속함의 시공 불량으로 드러났다. 시공 과정에서 미세한 틈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고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전류가 땅으로 흐르면서 송전선로의 전압이 순간적으로 떨어졌다. 일부 업체의 가동이 일시 정지되는 순간정전 현상이 나타났다. 여기까지는 전력 계통 운영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는 것이 조사단의 설명이다. 문제는 변전소 내 전기설비 고장 직후 GS칼텍스와 여수화력 변전소의 계전기(전력설비의 고장신호를 전달하는 장치)가 거의 동시에 오작동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 결과 변전소와 여수산단을 잇는 두 개의 송전선로가 모두 차단돼 GS칼텍스 LG화학 삼남석유화학 등 3개사는 23분간 공장 가동이 완전 중단됐다. 여수산단은 잦은 정전을 막기 위해 송전선로를 복선화했지만 두 개의 계전기가 모두 고장나 정전이 발생했다.
◆책임 규명은 빠져
조사단은 종단접속함 고장과 계전기 오작동 간에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 측 계전기 오작동은 변전소에서 발생한 외부 고장사고를 내부 송전선에서 발생한 고장으로 잘못 인식했기 때문이다. 여수화력 변전소 내 계전기 오작동은 내부의 비정상적인 전류유도 현상에 의한 것이란 게 조사단의 설명이다.
조사단은 그러나 비정상적인 전류 유도 현상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해외 제작사인 도시바의 원천기술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 단기간에 정확한 원인 규명이 힘들다.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 결론을 유보했다. 원인 규명에 실패한 대목이다. 책임 소재와 관련해서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오태규 조사단장은 "이번 정전 사고는 세 가지 고장이 우연히 동시에 겹치면서 발생했다"며 "기술적으로 불분명한 부분이 많아 책임 소재를 가리기 힘들고 누구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가나
피해 업체들은 조사 결과가 "너무 모호하다"는 반응이다. 정부와 조사단 관계자들은 '정전이 누구 책임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번 조사는 사고 원인을 가리는 데 초점을 맞췄을 뿐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는 대응으로 일관했다. 향후 있을지 모를 법정 공방을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수산단 피해업체들은 사고 발생 직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며 피해 보상을 놓고 한전 측과 법적 공방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경우 조사 결과는 결정적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만큼 정부와 조사단이 발표 결과를 신중히 조율했다는 것이다. 오 단장도 "책임 공방은 결국 변호사와 판사가 결정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