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 페르손 전 스웨덴 총리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으로 인해 유럽에 또 다른 재정위기가 올 수 있다"고 9일 말했다. 그는 "포르투갈 그리스 아일랜드 등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지원 아래 상황이 점점 진정되고 있다"며 "이들은 이제 그만 잊어버리고 유럽의 4대 국가들의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조연설 내용을 요약한다.

◆"미움받는 정치인 각오해야"

최근 유럽의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재정 적자가 문제다. 이와 관련해 스웨덴 재무장관으로 일한 1994년부터 1996년까지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장관 취임 당시 스웨덴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2%에 달했다. 그러나 4년 만에 2% 흑자로 돌려놨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사실 뭘 해야 하는가를 깨닫기도 어려웠지만 행동에 옮기기는 훨씬 힘들었다. 수입이 늘고 지출을 줄이면 된다는 것은 천재 아니라도 다 아는 것 아닌가.

나는 스웨덴 역사상 국민들에게 미움을 가장 많이 받는 정치인이었다. 연금 지급액을 낮추고 실업급여 혜택도 삭감하고 병가를 낼 때 받는 임금도 줄였다. 모든 걸 삭감했다. 모두가 반대했다. 사실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인정하고들 있었지만,'우리 말고 다른 사람 것을 줄여라'는 거였다. 그런데 어차피 내가 아무것을 안 해도 재무장관에서 해고될 것 아닌가. 그래서 뭐라도 하고 해고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실행에 옮겼다.

◆"스페인보다 프랑스가 더 위험"

사람들은 포르투갈 그리스 아일랜드 아이슬란드가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많이 얘기한다.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핵심이 아니다. 잊어버려라.이들의 상황은 IMF와 EU의 지원으로 진정되고 있다.

문제는 유럽의 4대 국가들이다. 세계에서 10대 국가 안에 드는 곳들이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이다.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모두 유로화를 쓰고 있다.

스페인은 지난 수년간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EU의 강력한 지원이 뒷받침됐다. 그럼에도 지금 문제에 처했다. 주택 부문에 거품이 생겼고 재정적자가 있다. 하지만 스페인만 하더라도 다른 곳(프랑스 등)만큼 문제는 아니다. 스페인은 한 1년가량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프랑스는 더 심각하다. 문제가 있고,빨리 손을 써야 한다. 프랑스의 부채 규모는 GDP의 85~95%에 이른다. 필요한 조치들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금 개혁을 시도했는데,그게 다른 국가들의 개혁과 비교하면 사실 큰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것 때문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갈등이 생겼다. 이 때문에 공공부문 62세 이상 은퇴자는 오히려 연금이 늘기도 했다.

프랑스는 지금보다 10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 공공부문 전체에 대해 삭감이 이뤄져야 한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 지방정부 부채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부채 수준이 가장 높은 곳은 이탈리아다. GDP의 120% 규모다. 이 돈이 다 어디서 나오냐 하면 자국 내에서 자금 조달이 주로 이뤄진다. 일본과 비슷하다. 그래서 괜찮아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통계적으로 잡히지 않는 지하경제 문제 등도 고려해야 한다.

◆"수출 경쟁력 중시해야"

영국은 자국 통화인 파운드화를 보유하고 있다. 시장에서 파운드화 가격이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수출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은 수출산업이 별로 없다. 무너졌다. 서비스산업은 취약하다. 어느 날 갑자기 소비자들이 간단히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산업은 제조업과 단단히 연결돼 있어야 한다.

영국 정부도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보수당의 신임 총리가 세율을 높이겠다고 했다. 영국 내부에서는 감당할 능력을 넘어서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지만,이런 대책을 실천하지 않으면 금리가 급등하고 불확실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악순환에 빠진다. 고통스럽겠지만 지금 당장 실천을 해야 한다.

간혹 유로화에 대한 문제 제기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유로화는 실패할 여지가 없다. 성공해야만 한다. 유로화는 철저한 타협과 합의의 산물이다.

재정정책은 각국 정부가,통화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이 맡고 있다. 그 중간에서 책임을 질 만한 주체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나는 이에 대해 재정정책도 EU 단위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결국 독립적 국가들의 연합이 아니라 '연방제'를 하자는 것이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논의가 이뤄질 것이고,그 과정에서 유로화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상은/강영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