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뛰는 물가로 국민들이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친구끼리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마시면 쉽게 10만원을 호가하고,기름 넣기가 겁난다며 BMW(버스+지하철+걷기)족으로 돌아선 사람도 많다. 신선식품 등 식탁 물가가 급등하고,전 · 월세 가격이 오르고,금리까지 상승세여서 고통이 더욱 크다. '삼겹살이 금겹살'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우유 대신 두유를 먹는다는 판이다.

최근의 물가 오름세는 불가항력적 측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으로 인해 원유를 비롯한 국제원자재 값이 다락같이 치솟고,국내적으로도 구제역에 이상 기온까지 덮쳐 농 · 축산물 생산이 대단히 부진하다. 내우외환이 따로 없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국민들의 생활은 팍팍하기 짝이 없는데 정부가 고통을 함께하는 모습은 왜 볼 수가 없는가. 유류세라도 내리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지만 정부는 세수가 줄어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정말 이래도 되나.

한번 따져보자.물가가 오르면 국민들은 수입이 사실상 그만큼 줄어든다. 정부도 그러할까. 아니다. 오히려 늘어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상품값에는 어김없이 10%의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물가가 오르면 세금도 비례해 증가한다. 한 해 부가세 수입이 50조원을 넘고,물가오름세가 억제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는 만큼 정부는 수조원의 부가세를 당초 예상보다 더 챙길 확률이 높다.

유류세를 내려도 전체 세수 측면에선 큰 차이가 없을 것이고,감소한다 해도 소폭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수 감소 주장은 지나친 엄살이다.

유류세는 다양한 명목으로 부과된다. 휘발유 1ℓ에는 교통세 529원과 함께 교통세의 26%인 137.54원이 교육세,교통세의 15%인 79.35원이 주행세로 각각 붙는다. 여기에 또 부가가치세가 더해진다. 그렇게 해서 휘발유 값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게 바로 세금이다.

유류세 인하 논란의 핵심은 교통세다. 교통세는 ℓ당 475원에 ±30% 범위의 탄력세율을 적용한다. 현재는 11.37%의 할증탄력세율(54원)이 적용된다.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가 늘어나는 효과까지 감안하면 소비자들은 대략 83~84원 정도를 할증탄력세율 때문에 더 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할증탄력세율만 폐지해도 휘발유 값은 그만큼 낮아진다. 지금과는 반대로 11.37%의 할인탄력세율을 적용한다면 하락폭은 두 배로 확대될 것이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를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2008년 당시,기름값이 계속 올라 국민들은 세금인하 효과를 체감하지도 못했는데 세수만 1조4000억원 감소한 전례가 있다는 주장도 편다. 하지만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게다가 유류세를 내릴 당시의 휘발유 가격은 ℓ당 1650원 선으로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웃돌면 감세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들은 환율과 할증탄력세 등의 영향으로 이미 사상 최고 수준의 휘발유값을 치르고 있다. 지금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920원에 육박하고 서울시내에선 2200~2300원을 호가하는 곳도 숱하다.

국내정책은 국제유가가 아니라 국내유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유류세 인하는 시기를 앞당기는 게 맞다. 지난해 남긴 세계잉여금도 7조8000억원에 이르는데 국민들의 요구를 왜 외면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치솟으면서 국민들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실질 소득도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황에서 할증탄력세까지 물게 하는 것은 정말 너무한 일이다. 유류세는 지금 당장 내려도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봉구 기획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