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28일.세계 2위 선사인 스위스 머스크(MSC)사의 9178TEU급 컨테이너선 'MSC ASYA'호는 부산신항으로 들어오기 전 공해상에서 7시간을 기다렸다. 부산신항만의 수심이 얕은 게 원인이었다. 선박을 인도하는 도선사들은 얕은 수심 탓에 배밑이 바닥에 닿을 수 있다고 판단,만조 때까지 입항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컨테이너선이 대형화되면서 동북아의 허브항을 꿈꾸는 부산신항이 수심 때문에 주변항(피드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현재 부산항 신항의 앞바다 수심은 15m로 컨테이너박스 1만개를 싣는 대형 컨테이너선이 드나들기엔 부족하다. 중국의 닝보항이나 싱가포르항,홍콩항 등 부산신항의 경쟁항은 이미 수심 17m를 확보해 놓고 있다.

◆입 · 출항에 9시간 기다리기도

작년에 문을 연 부산신항을 드나드는 선박은 현재 대부분 1만TEU급 이하다. 문제는 이들 선박조차 입 · 출항 때 물이 가장 높이 차는 만조시까지 기다리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점.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09~2010년 부산항에 입항한 대형 선박들의 지연 사례는 모두 15건에 달했다. 입 · 출항 대기시간은 2시간에서 최고 9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산신항과 허브항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주요 경쟁국 항만의 수심은 이미 '1만TEU 시대'에 대한 대비를 끝냈다. 중국 닝보항의 수심은 18m다. 싱가포르항도 17m,홍콩항은 16.5m의 수심을 확보하고 있다. 로테르담항은 최저 수심이 무려 23m다. 국토부는 2016년 부산신항의 앞바다 수심을 17m로 증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경쟁국에 비하면 너무 늦다는 지적이 많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작년 5월 MSC가 1만TEU급 선박을 아시아-유럽 노선에 투입하기로 하고 기항지로 부산항을 지정하면서 수심 17m를 요구했었다"며 "아무리 인프라를 잘 갖춰도 수심이 낮으면 대형 선박이 기피하기 때문에 '수심'은 항만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2015년 1만TEU 이상이 주류

선박 건조는 이미 1만TEU 이상급으로 대형화되는 추세다. 세계 최대 선사인 MSC는 지난 2월 대우조선해양과 2014년 배를 인도받는 조건으로 1만8000TEU급 선박 10척을 발주했다. 20척을 추가로 발주할 예정이다. 20피트 컨테이너박스 1만개 이상을 실을 수 있는 1만TEU급 이상 대형 선박이 주요 항만으로 입 · 출항하려면 적어도 바다 깊이가 17m는 돼야 가능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만TEU급 이상 선박 수는 현재 39척(총 선대량 대비 3.5%)에 불과하다. 하지만 2015년에는 204척(15.6%)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KMI 관계자는 "지금 수심으로는 향후 1만TEU급 이상이 들어오면 바닥에 닿을 수도 있다"며 "부산신항이 주변항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1만TEU 선박이 물건을 가득 실을 경우 배가 15m가량 물밑으로 가라앉는다"며 "만조가 되면 1.5m 가량 여유가 생기지만 하루빨리 준설 공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브항이 되면 입항료 수입뿐만 아니라 선원들이 쓰는 물품 구입비 등의 수입도 만만치 않다.
전 세계 주요 항만이 '수심(水深)'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일 유럽 항만운영사인 유로게이트는 2012년 개장하는 독일 빌헬름스하펜 터미널 로드쇼에서 "수심이 18m에 달해 1만8000TEU급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KMI 관계자는 "동남권 신공항보다 부산신항 깊이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


◆ TEU

twenty-foot equivalent unit.길이 20피트(ft)의 컨테이너 박스 1개를 나타내는 단위.컨테이너 전용선의 적재 용량은 주로 TEU 단위로 표시한다. 1만TEU급 컨테이너선이라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만개를 실을 수 있는 배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