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나노 모형에 天·地·人 합일사상 풀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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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면추상 1세대 홍정희 씨 작품전
'붉은색,푸른색,노란색 등 원색들이 나란히 줄을 지어 자유와 환희를 변주한다. 폭발하는 활화산의 분화구 같이 분출돼 나오는 색의 기운들이 매끄러운 화면 사이로 흐른다. '('나노' 시리즈)
한국 색면추상화 1세대 작가인 홍정희 씨(66)의 작품은 언제 봐도 호쾌하고 생기발랄하다. 그의 2005년 이후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대규모 신작전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 현대 강남점에서 열리고 있다.
홍씨는 1970~1980년대를 풍미했던 팝아트나 구상표현주의 운동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한국적인 미를 색면으로 표현해 온 작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 미대에서 연구생활을 한 그는 1971년 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1997년 석주미술상을 받으며 '색의 연금술사'로 불려왔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나노(Nano)'.물리학에서 미세 단위를 지칭하는 나노 모형에 천(天) · 지(地) · 인(人)의 합일사상을 풀어낸 3~4m 크기 '나노' 시리즈 근작 60여점을 내놓았다.
30년 넘게 색면추상화 장르만 고집해온 그의 작업은 산모형,십자가형,네잎클로버형,꽃잎모형 등 비교적 단순화된 문양을 강렬한 원색으로 담아낸다.
삼각형과 역삼각형,오각형,집 모양의 기하학적 형상들은 화면에서 잘 정렬된 질서를 느끼게 하고 방향감있는 리듬을 부여함으로써 시각적인 잔상과 여운을 남긴다. 체로 쳐낸 톱밥을 물감에 섞어 칠하는 기법은 독특한 마티에르(질감)를 형성하면서 작품의 색채를 더욱 깊게 만든다.
마티에르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그는 "톱밥을 섞은 물감을 덧칠함으로써 두터운 질감 효과를 드러낸다"며 "우주에 축적된 시간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인 기법"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나노' 시리즈는 우주의 합일사상을 색채 미학으로 풀어낸 작품.군더더기 같은 이미지를 원색에 응축시키고,공간의 무한한 확장을 꾀했다. 서로 다른 기운의 상생과 합일사상을 문양 형태로 풀어낸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나노' 시리즈는 변증법적인 과정을 거쳐 최근 6년간 천착해온 제 작품세계입니다.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결하고 순수한 형식미가 두드러진 작품이죠."
그의 작품 세계는 10년을 주기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1970년대 중반 불안한 시대의 한국인 초상을 형상화한 '자아-한국인' 연작,1980년대 새로운 자아를 찾는 '탈아(脫我)' 연작,1990년대 생명 이미지를 조형화한 '열정' 연작,2005년 우주의 합일을 이미지로 묘사한 '나노' 시리즈 등을 차례로 선보이며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바다나 하늘을 연상시키는 수직과 수평 구도는 우주와 인간의 내면 세계를 응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20일까지 이어진다. (02)519-08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