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수 대주회계법인 이사(45 · 사진)는 작년 이맘때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코스닥 상장 태양광 업체 네오세미테크의 외부감사를 맡았을 때 일이다. 겉보기에 완벽한 듯했던 재무제표를 감사하던 중 300억원가량의 매출에 원가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희한한 사실을 발견한 것.

이상하다는 생각에 담당자에게 캐묻자 인천공장의 기계장치를 판 것을 매출로 잡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형자산을 처분한 것을 매출로 잡아 부풀린 것.서 이사는 의구심을 갖고 공장을 철저하게 실사했다. 그 결과 12건에 달하는 분식사실을 발견했다. 투자자들을 위해 분식 투성이인 재무제표에 대해 당연히 '의견 거절' 판정을 내렸다.

대주회계법인의 감사의견 거절로 네오세미테크는 지난해 8월 상장 폐지돼 법원의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서 이사는 분식회계를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아 25일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제3회 국민신문고대상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그는 "7000여명에 달하는 소액주주가 큰 손실을 봤기 때문에 상을 받은 사실이 기쁘기보다 착잡하다"는 심정을 피력했다.

서 이사는 "하지만 초기 단계에 잡아내지 못했다면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도 있었던 만큼 감사의견을 거절한 것을 잘한 선택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사 측의 온갖 회유도 물리쳤고,주가 상승을 기대해 쌈짓돈을 투자했던 소액주주 7000여명의 협박 이메일과 전화를 하루에 수십통씩 받았다며 1년 전 악몽을 떠올렸다.

서 이사는 네오세미테크와 같은 부실회사에 잘못 투자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재무제표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매출과 자산이 급증하는 회사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업의 매출이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라며 "이때는 매출을 부풀렸는지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꾸준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데 회사채 발행과 증자 등을 통해 자금을 계속 모으는 기업도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무리하게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회사의 현금흐름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의미이므로 '흑자도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서 이사는 또 고유사업과는 관련 없는 신규사업을 계속 확장해 나가는 회사도 부실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예컨대 태양광업체가 땅을 사고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면 고유사업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 측에서 강조하는 성장성에 현혹되기보다는 재무제표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 실적이 탄탄한 기업인지 확인한 뒤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