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이란에서 일어난 혁명은 '카세트 테이프 혁명'으로 불렸다. 파리에 망명해 있던 이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의 연설을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가 이란으로 밀반입되면서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에 의해 대량 복제돼 이란 전역으로 퍼진 테이프는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공화국 탄생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에선 대학생들이 팩시밀리를 통해 서방에 시위 소식을 알렸다. 언론과 통신매체가 대부분 통제됐던 탓이다. 팩스로 시위 상황을 받은 서방 대학생들은 외부의 보도내용을 다시 팩스로 중국에 전했다. '팩시밀리 혁명'이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인터넷이 혁명 수단으로 등장한 것은 1991년 유고슬라비아가 슬로베니아를 침략했을 때다. 슬로베니아 대학생들은 민간인까지 학살하는 유고군의 잔혹함을 이메일로 알렸다. 유고를 규탄하는 국제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유엔이 개입해 내전을 종식시켰다.

튀니지에서 시작돼 북아프리카,중동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민주화 바람엔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M(모바일)혁명'으로 불린다. 휴대전화를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만큼 위력이 대단하다. 무바라크 정권을 단숨에 무너뜨리더니 42년 장기집권한 카다피까지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바레인 요르단 예멘도 영향권에 들어 있다.

북한도 바짝 긴장하는 모양이다. 조선중앙방송 등은 혁명 소식이 퍼질까봐 주민들의 사상무장을 연일 강조하고 있단다. 외부정보 유입을 단속하는 특별검열조직까지 생겼다. 일부 지역에선 휴대전화를 차단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북한에서 혁명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감시와 통제가 워낙 철저한데다 SNS는 물론 인터넷조차 외부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라디오 CD DVD 등을 통해 바깥 소식과 영화 드라마 등을 접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얼마전부터는 탈북자 단체가 개발한 '스텔스 USB'까지 들어간단다. 세관 검색에선 비어 있는 것으로 표시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외부 뉴스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가 살아나는 저장장치다.

이렇게 바깥 세상 소식을 계속 접하다 보면 북한 주민들도 느끼는 게 많을 게다. 당장의 혁명은 몰라도 변화가 싹트게 돼 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