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연말정산 시즌이다. 평소 세금에 대해 아는 것도, 관심도 별로 없는 월급쟁이들이 그나마 1년에 한번 반짝 세금에 관심을 갖는 때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쯤 되면 생각지도 않던 돈이 생기는 걸 봉급생활자들은 다들 잘 알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웬만한 소득공제 내역이 국세청 전산망으로 모두 취합되는 덕에 연말정산이 한결 편해졌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상황은 아주 달랐다. 각종 공제내역을 잘 모르거나 '귀차니즘'때문에 영수증이나 관련 공제 서류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당연히 '찾아 먹어야 할' 돈도 못 받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돌려 받은 액수가 많든 적든, 일단 세금 환급을 받은 사람들은 저마다 싱글벙글했고 그래서 연말정산에는 '13월의 보너스'라는 별칭도 붙여졌다. 두둑해진 지갑으로 술 한잔 기울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지난해에 비해 환급액이 크게 줄어든 사람이 많고 심지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경우도 주변에 심심치 않게 보인다. 물론 개인적으로 예년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는 케이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지난해와 같은 조건이라면 연말정산 수지(?)가 전년 대비 악화된 사례가 많아졌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매달 월급에서 떼는 원천징수세액이 줄어든 게 큰 원인 중 하나다. 달마다 떼는 세금이 상대적으로 많으면 연말에는 그만큼 많은 돈을 돌려 받지만 미리 적게 떼면 연말에는 조금 돌려받거나 오히려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세율인하로 지난해 월별 원천징수액이 예년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 축소도 환급액 감소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 종전 총급여의 20% 초과분에 대해 500만원 한도까지 소득공제해 주던 것이 총급여의 25% 초과분에 대해 300만원까지로 바뀐 것이다. 필자도 올해 처음으로 신용카드 소득공제 대상에서 배제돼 수십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할 판이다. 이 밖에 장기주택마련저축이나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들에 대한 공제요건이 까다로워지고 공제액이 줄어든 것 등도 연말정산 수지 악화의 원인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봉급생활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필자 역시 직장생활 시작 후 처음으로 연말정산 결과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처지가 되다보니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반응은 과연 합리적인 걸까? 연말정산으로 수백만원의 돈이 생겨 친구들에게 한턱 쏘는 사람을 부러워해야 할까? 가만히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많은 돈을 돌려받는다는 건 정작 내야 할 세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나라에서 대충 미리 거둬 갔다가 이자도 없이 뒤늦게 돌려줬다는 얘기다. 반대로 연말정산으로 세금을 더 낸다는 건 그간 덜 낸 세금을 가산세도 없이 나중에 납부하는 것으로 해당 금액의 이자만큼 이득이니 결코 기분 나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람들의 반응은 반대다. 당장에 목돈이 생기면 좋은 반면 돈을 더 내라면 화를 낸다.

소득세 원천징수라는 제도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속성을 간파한 교묘한 장치다. 징세비용이 적을 뿐 아니라 조세저항도 거의 없고 대충 걷은 뒤 나중에 돌려줘도 불평은커녕 오히려 환영 일색이니 말이다. 적어도 세금에 관한한 월급쟁이는 '봉'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말정산 세금 환급 때 이자라도 붙여 달라고 우리 월급쟁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걸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