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안세영 서강대 교수


지난 21일부터 5일간 열리는 2011년 재외공관장 회의에서 '비즈니스 외교'가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재외공관(대사관)이 정무 분야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현지 진출한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고,원전 · 플랜트 · 인프라 등의 수출을 지원하는 서비스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재외공관은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지점(支店)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이 21일 '비즈니스 외교'를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재외공관장을 평가할 때 기업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단순 세일즈 외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해 국내 기업에 연결해주는 '최고경영자(CEO) 공관장'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사 17층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김성철 주(駐)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대사와 전비호 주 불가리아 대사,외교통상부 본부의 김은석 에너지자원 대사,이왕규 무역협회 해외마케팅본부장이 참석했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사회를 봤다.

▼안세영 교수=외교관에게 비즈니스 마인드를 강조하는 이유는 뭡니까.

▼김성철 대사=외교관이 국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과거에는 주재국의 정세 보고가 대사관의 주된 임무였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본국에서 더 빨리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입니다. 국가 원수들도 중요한 비즈니스 딜을 따내려고 발로 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사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변해야 합니다. 외교관들이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하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 요구에 부응할 수 없습니다.

▼안 교수=작년 11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사르코지 대통령이 부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를 대동하고 공항에서 영접했습니다. 프랑스는 이런 파격적인 예우를 하면서 중국에 에어버스 102대를 팔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도 이명박 대통령이 백방으로 뛰었다고 합니다. 과거엔 '세일즈 외교'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최근엔 '비즈니스 외교'라고 합니다. 차이가 무엇인가요.

▼김은석 대사=외교부도 작년까지 세일즈 외교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올해부터 비즈니스 외교로 바꿔 쓰고 있습니다. 판촉을 도와주는 데 머물지 않고 주재국의 수요와 우리 기업의 강점을 연결,해외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CEO 공관장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죠.

▼안 교수=기업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재외공관을 바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왕규 본부장=기업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려면 현지에 부임하기 전 주재국의 경제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정보가 빈약한 중견 ·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대사관이 해외지사 역할을 해야 하고요. 또 현지에서 벌어지는 국내 기업 간 과당경쟁에 대해서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전비호 대사=좋은 지적이시지만,요즘 주재국 경제 현황을 모른 채 재외공관으로 떠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 대해서도 미리 공부하고 떠납니다.

▼안 교수=중국이 아프리카와 중남미에 돈을 퍼주며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자원전쟁에서 뒤지면 안 되는데 그런 면에서 외교부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김은석 대사=외교부는 전 세계 160여개의 재외공관 네트워크를 갖고 있습니다. 재외공관 망을 이용해 현지의 살아 있는 정보를 모아 관계 부처나 기업에 직접 전달함으로써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에너지외교 대표단이 아프리카 등을 방문할 때 민간 기업과 함께 가 현지 관료를 소개해주고 현장에서 사업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안 교수=성공 사례가 있나요.

▼김은석 대사=성과들이 서서히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순께 STX그룹이 가나에서 주택건설사업 20만호,100억달러어치의 계약을 따냈습니다. 지난달 26일 1단계 사업(15억3000만달러)을 착공했습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사업입니다.

▼이 본부장=업계에서는 막상 지원을 요청하려면 대사관 '문턱'이 아직 높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전 대사=지금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주 불가리아 대사관은 작년에 각 시 · 도에 연락해 동유럽으로 시장개척단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시장개척단이 10여 차례 불가리아에 왔습니다. 공관 직원들이 무역상담 현장에 직접 가 바이어처럼 상담을 했습니다. 업체들 반응도 좋았고요.

▼김성철 대사=DR콩고의 경우 국내 한 중소기업이 2년 반 동안 열심히 노력한 끝에 구리 광산권을 받고 인프라건설과 연계하는 계약을 따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와 업체 관계자들이 현지 당국자들을 수십 차례 만나고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안 교수=현장에 나가 있는 기업들은 어떤 지원이 가장 절실한가요.

▼이 본부장=과거에는 대사들이 현지 당국자들을 주로 만났지만 앞으로는 주재국 기업의 CEO와 접촉을 더 많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주재국 기업의 네트워크를 통해 현지 시장의 정보를 수렴해 "이런 분야에 진출하고,투자하라"고 가이드해 주면 우리 기업들이 크게 신뢰합니다. 지난해 슬로베니아 공관에서 무역협회에 투자사절단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직원들이 감동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기업들은 얇고 넓은 지식이 아니라 좁고 깊은 지식을 원합니다.

▼전 대사=대사관의 비즈니스 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매치메이킹(matchmaking)'입니다. 정확한 정보를 통해 우리 기업의 수요와 현지 마켓의 수요를 연결해주는 매치메이커가 돼야 한다는 것이죠.5~10년 후 우리 기업들의 먹을거리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 교수=공관장 평가를 할 때 기업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성철 대사=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관장들이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김은석 대사=저 역시 기업이 공관장을 평가하는 방안에 찬성합니다. 덧붙여 대사들이 비즈니스 외교를 제대로 하려면 기업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대사들이 기업인을 자주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어떤 기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대사들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재외공관장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이를 외교부에 보고하고,외교부는 지경부로 협조공문을 전달하고 지경부가 무역협회나 대한상의를 거치면 일이 잘 진척되지 않습니다. 대사들이 업체를 잘 알고 있다면 사업을 직접 연결해줄 수 있다는 것이죠.그럼 일이 훨씬 빨리 진행됩니다.

▼안 교수=기업들도 열린 마음으로 외교관을 대해 달라는 주문이시군요. 재외공관과 기업이 너무 밀착하면 정경유착이라는 지적도 나올 법한데요.

▼김성철 대사=제가 DR콩고에서 중소업체를 많이 도와주니까 일부에서 "대사와 기업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았습니다.

▼김은석 대사=유착관계 우려는 우리가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비즈니스 외교를 유착으로 보면 국부 창출에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리=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