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바다'로 가라앉는 영국이 잇단 복지제도 개혁으로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병원과 학교 같은 공공부문을 기업 등 민간에 개방해 무한 경쟁시키기로 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던 무상 의료의 대명사 격인 국민보건서비스(NHS)까지 70여년 만에 수술할 예정이다. 실업수당 감축을 내용으로 한 복지개혁안을 발표한 지 사흘 만이다. 영국의 복지개혁은 295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자구책이다.

◆공공부문,민간과 자유경쟁 체제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정부가 오랫동안 독점해온 공공부문 사업체를 자유 경쟁을 통해 민간에 넘길 계획이라고 일간 텔레그래프가 20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민간기업은 물론 봉사단체와 자선재단까지 학교와 병원을 비롯한 다양한 공공시설의 운영권과 소유권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번 개혁안에는 사법과 안보 분야를 제외한 모든 공공부문이 포함됐다. 공원 및 도로의 유지보수,노인 보호시설,장애인 특수학교처럼 지방자치단체에서 관할하던 사업들도 민간에 전면 개방한다. 절대적인 국민 지지를 받아온 NHS는 역대 정권들도 손대지 못했던 '성역'이었다.

정부는 민간으로 경영권을 이양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비용을 절약하며 케케묵은 관료주의까지 벗어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캐머런 총리는 "(위에서)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낡고 오래된 톱다운식(top-down · 예산 총액배분 자율편성제) 공공서비스는 이제 끝"이라며 "정부가 통제해온 공공서비스 부문은 '완전한 변형'을 거쳐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권 보수당은 최근 일련의 복지개혁안에 대해 "근래 수십여 년간 가장 큰 변화이며,가히 혁명"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제1야당인 노동당을 비롯해 노동계는 정부의 잇따른 복지개혁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개혁안을 백서 형태로 2주 내 내놓을 예정이다.

◆재정적자 개선 위해 복지개혁 불가피

영국 정부는 앞서 지난 17일 실업수당 감축을 골자로 한 복지개혁안을 발표했다. 구직을 거부하는 실업자에게는 불이익을 주고 일자리를 열심히 찾는 사람에게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쓰겠다는 것이었다. 일자리 제안을 반복적으로 거절하는 실업자는 최대 3년간 수당을 받을 수 없다. 한 가구가 받을 수 있는 수당 총액도 연간 최대 2만6000파운드(4677만원)로 제한하기로 했다.

복지국가의 효시 격인 영국이 보편적 복지의 종언(終焉)을 선언한 것은 복지를 떠받칠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말 끝난 2009~2010회계연도의 재정적자는 1634억파운드(295조원)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았다. 경기가 침체될수록 실업수당 지출이 늘어나며 재정 부담이 커지는 악순환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일하지 않고 혜택만 받으려는 도덕적 해이까지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분석했다. 다급해진 캐머런 총리는 과거 마거릿 대처와 토니 블레어 행정부가 이루지 못했던 복지개혁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요람에서 무덤까지

from the cradle to the grave.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가 1942년 주창한 법안의 내용으로 현대 영국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이 됐다. 국민이 기본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여러 제도를 통합했다.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해주는 것은 물론 실업 질병 은퇴 등 소득 상실에 대비한 포괄적 사회보장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