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0월19일이었죠.당시 박계동 민주당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신한은행 등에 숨겨져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실수였는지는 모르지만 한 신한은행 간부는 비자금이 있다는 사실을 덜컥 시인했고요.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내정자께서는 당시 47세로 인사담당 상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무실로 찾아가 그 간부의 사진을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그때 "달랠 것을 달래야지,사진이 어딨느냐"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진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혹시나'하는 마음은 있었습니다. 내정자께서는 다른 신한맨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죠.무조건 '우리끼리'보다는 외부 얘기도 들으려 하고,조직을 위해 몸을 던지면서도 균형감각을 유지하려는 그런 이미지 말입니다.

이런 모습이 '신한 문화'와는 약간 달라서였을까요. 45세에 임원이 돼 승승장구하던 내정자께서는 신한은행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신한생명 사장과 부회장을 지낸 뒤 2009년 신한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년 뒤 신한금융지주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출됐습니다. '친(親) 라응찬'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 말입니다.

회장후보로 내정된 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면서 '친라(親羅)'라니 말이 되느냐"고 억울해 했습니다. 하지만 금융계에는 라 전 회장의 지원을 받아 회장 후보가 된 것이 정설로 돼 있습니다. 이런 억울함을 풀려면 '친라'라는 꼬리표를 스스로,그것도 하루 빨리 떼어내야 합니다.

당장은 갈라진 직원들이 문제입니다. 지적하셨듯이 5개월간의 내분사태를 겪으면서 직원들은 줄서기를 강요당했습니다. 감정의 골도 푹 패였습니다. 이를 하루빨리 치유해야만 '친라' 이미지를 지울 수 있습니다. 끝까지 내정자를 반대한 재일교포 주주들과의 관계 개선도 숙제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신한 내부엔 '구(舊)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절반이나 됩니다. 옛 조흥은행,옛 LG카드 출신들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들 중 상당수는 소외감을 느껴왔습니다. 내분사태를 겪으면서는 더욱 위축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친라' 꼬리표를 떼기 위한 더 큰 과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겁니다. 신한금융의 지배구조는 주인없는 국내 은행의 모범으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허상이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과 탄탄한 후계구도는 자리다툼의 다른 말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건실한 사외이사제'란 것도 파벌싸움을 부추기는 또다른 '끼리끼리 문화'에 불과했습니다.

내정자께서는 이런 오명을 씻어내야 합니다. 하나금융지주처럼 CEO의 연령을 만 70세로 제한하든지,미국 은행들처럼 곧바로 후계 양성작업을 시작하든지,사외이사의 권한을 강화하든지는 내정자께서 선택할 문제입니다.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친라' 이미지를 지우는 지름길입니다.

'월스트리트의 황제'로 불리던 샌디 웨일 전 씨티그룹 회장은 2003년 CEO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찰스 프린스를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차기 CEO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던 그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프린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불명예퇴진하고 말았습니다.

회장으로 선출되신 것에 대한 축하인사는 '친라' 꼬리표를 뗀 뒤에 드리겠습니다.

하영춘 경제부 금융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