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출범 3주년(25일)을 앞둔 청와대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한 관계자는 15일 "답답하다. 길이 잘 안 보인다"고 말했다. 물가상승,전세대란,구제역 확산이 겹치면서 민심이 악화된 데다 동남권신공항 및 과학비즈니스 벨트 입지 등 대형 국책 사업들의 추진도 지역 갈등으로 발목이 잡혀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청와대와 야당 간 소통 채널이 막힌 데다 당 · 청 관계도 원만치 않다. 여권 내부에선 이러다간 집권 4년차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당 · 청-당 · 정 '동맥경화'

청와대가 '멀티 딜레마'에 빠졌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가 무력감을 보이는 데는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값 상승 등 외생적 변수도 있지만 '자책'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우선 이 대통령 스스로 한 '공약의 덫'에 발목이 잡혔다. 과학비즈니스벨트와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4월 재 · 보선에 빨간불이 켜졌다며 불만의 화살을 청와대로 돌리고 있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갈등 조정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위원회나 관련 부처로 돌렸다. 국정 전반기 주요 현안을 청와대가 주도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임기 초 터졌던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사태에 대해 청와대가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의하며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만들었으나 이번엔 그런 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았다.

개헌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 대통령이 잊을 만하면 불쑥 개헌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정치권에 논란을 촉발시켰지만 모든 논의는 정치권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뒤로 빠지니까 혼선만 부채질한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이 대통령이 개헌논의에 간섭하진 않을 것이라고 한 데 대해 "(국회에서) 그런 논의를 해본 들 개헌추진이 안 되는데 왜 자꾸 문제를 일으키느냐"며 "차라리 구제역,물가,주택 전 · 월세 문제에 집중하는 게 옳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公心(공무원 마음) 잡아 레임덕 차단

이런 정황들 때문에 이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아 잔치보다는 겸손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성과를 홍보하기보다 미진한 것들을 점검하고 마무리짓겠다는 방향으로 맞이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들이 잇달아 부처별 중 · 하위급 공무원들을 만나기로 한 것은 임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공직사회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권 초반 공직기강 다잡기에 치중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세,물가 문제는 단기적으로 속시원하게 해결하기 쉽지 않아 고민이 크다"며 "구제역은 수질 오염 등으로 심각한 민심 이반을 부를 수 있는 만큼 대책반(TF)을 꾸리는 등 최우선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