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여행] 히로쓰 가옥 2층에 올라서니 화려한 '군산의 추억' 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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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上)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무대, 적산가옥으로 유명한 히로쓰의 집
육중한 쇠창살 시마타니 금고 건물, 가파른 일본식 기와지붕 동국사
쌀 200만석 공출했던 '미두항'
700원 호떡에도 近代의 역사가…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무대, 적산가옥으로 유명한 히로쓰의 집
육중한 쇠창살 시마타니 금고 건물, 가파른 일본식 기와지붕 동국사
쌀 200만석 공출했던 '미두항'
700원 호떡에도 近代의 역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시멘트 포장도로인 전주ㆍ군산간 도로를 따라 근대문화유산의 도시 군산을 찾아간다. 개정면 발산리,일제강점기 일인 지주 시마타니 야소야의 농장이 있던 발산초등학교에서 답사를 시작한다. 본관 뒤뜰로 돌아가자 고려시대 5층석탑과 석등을 비롯한 육각형 부도,문인석,석상 등 30여점의 '시마타니 컬렉션'이 모습을 드러낸다. 구름 속에서 꿈틀거리는 용의 모습이 생생하게 새겨진 하대석을 가진 석등(보물 제234호)과 완주 봉림사터에서 옮겨왔다는 4층석탑(보물 제276호)은 간결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시마타니 컬렉션'과 일본식 절 동국사
바로 옆에는 육중한 철문과 쇠창살을 박은 창으로 중무장한 시마타니 금고 건물이 있다. 6 · 25전쟁 때 인민군이 우익 인사들을 감금했던 견고한 건물이다. 이곳에 보관돼 있던 문화재들은 지금 어디서 회귀를 꿈꾸고 있을까. '유곽골'(명산동) 사거리를 지나 동국사에 이른다. 대웅전은 눈 · 비가 잘 흘러내리도록 급경사를 이룬 일본식 기와지붕으로 복도를 통해 요사와 연결된 특이한 구조다. 동국사는 고은 시인이 19세(1952년)에 중관학(中觀學)의 권위자인 중장혜초를 은사로 출가한 곳이다. 대웅전 뒤에는 100년간 푸르름을 이어온 대숲이 있다. 대숲 어딘가에 있을 일초 스님(고은)의 참선 땅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보살들에게 물으니 안전 때문에 땅굴 입구를 막아버렸다고 한다.
어디선가 에탄올 냄새가 풍겨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 옛 백화양조 앞으로 뻗은 월명로를 걷는다. 음식점이 된 군산부윤 관사를 스쳐지나 일본식 목조기와집인 히로쓰 가옥에 닿는다. 현관 옆 둥근 창의 중국풍 대나무 창살 장식이 멋스럽다. 복도를 따라가며 방들을 들여다본다. 다다미방과 온돌방을 합쳐 모두 12개나 된다. 좁은 나무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창을 열자 납작 엎드린 신흥동 일대의 판잣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화양조 옆 히로쓰 가옥
히로쓰는 전주통(영화동)에서 포목점을 경영하는 한편 쌀 현물 투기장이었던 미곡취인소(미두장) 이사도 지냈다. 이 집의 높은 담장은 자신이 저지른 죄과를 감추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인지 모른다. 광복 후 호남제분 사택으로 쓰인 이 건물은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하야시의 집으로,영화 '타짜'에서는 평경장(백윤식 분)이 사는 집으로 나오기도 했다.
아직도 군데군데 남은 일본식 가옥들을 보며 군산여상 뒤 사잇길로 월명공원에 오른다. 어업무선국 송신소 앞,소설 《탁류》의 머리말이 새겨진 채만식문학비와 바다조각공원의 조각들을 둘러보고 돛단배와 횃불을 형상화한 수시탑에 이른다. 강 건너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우뚝하다. 인천 앞바다까지 간다는 저 굴뚝의 연기가 내 사춘기의 먼 곳에 대한 동경을 자극하곤 했다.
피난민들이 이룬 해망동 산동네 판잣집들 사이로 난 '깔끄막' 길을 따라 해망굴로 내려간다. 내항과 시내를 직통으로 연결하려고 뚫은 131m 길이의 반원형 터널인 해망굴은 인민군 지휘소가 있었던 곳이다. 천장 곳곳에서 물이 새던 예전과 달리 말끔히 수리해 놓은 굴이 왠지 낯설다. 해망로를 타고 일제 강점기의 건물 '갤러리' 혼마치(本町)로 간다.
'군산의 심장' 미두장(米豆場)
5월 개관을 앞두고 한창 공사 중인 근대역사박물관(가칭) 옆에는 옛 군산세관이 있다. 벨기에에서 수입한 적벽돌로 지은 이 건물은 동판 지붕 위에 3개의 첨탑을 세워 악센트를 주었다. 1990년대까지 세관으로 쓰다가 바로 옆에 사옥을 지어 옮겨갔다.
군산 지역 최초의 은행이었던 옛 장기18은행 군산지점으로 발길을 옮긴다. 미곡 반출과 고리대금을 갚지 못한 농민들의 토지를 강탈했던 이 악랄한 은행 건물은 흰색이어서 더욱 가증스럽다.
개항(1899년) 100주년을 기념해 조성한 백년광장 옆에는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있다. 서양 고전주의 건축 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은 카바레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의 모든 장르를 섭렵하던 중 화마를 만나는 바람에 흉물이 된 외벽을 성형 중이다. 조선은행 맞은편 내항 사거리엔 쌀표를 사고팔던 투기장 '미두장'의 표지석이 있다.
내항으로 나가 화물을 싣기 좋도록 물때에 따라 위 · 아래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한 다리 모양의 구조물인 부잔교를 바라본다. 부잔교 설치 후 쌀 공출량은 200만석을 넘어설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4기를 설치했으나 현재 3기만 남아 있다. 내항을 따라 뻗은 폐철로가 전후에 태어난 내게 식민지의 트라우마를 앓게 한다.
판잣집 사이로 기차가 달리던 경암동 기차마을
경암동 철길 마을을 찾아간다. 1944년 북선제지 군산공장(현 세대제지)이 군산역에서 북선제지까지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가설한 총연장 2.5㎞의 '북선제지선'(페이퍼 코리아선)이 마을 한가운데를 지난다. 경암사거리에서 GS골드주유소에 이르는 1.1㎞가량의 철로를 걷는다. 철로 양쪽으로 판잣집들이 바싹 붙어 있다. 이보다 더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한 공간은 다시 없으리라.
5~10량의 화물 컨테이너를 달고 하루 두 차례 지나가던 디젤기관차는 2008년 7월 이후 발길을 끊었다. 철길 옆 판잣집들이 기다림에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옛 군산역을 찾아가는 길에 중동 옛 공설운동장 뒤편 '중동호떡'에 들렀다. 집주인 이연욱씨(69)는 아버지가 1946년에 시작한 호떡집을 대를 이어 하고 있다. 1개에 700원 하는 호떡을 사려고 세 평도 안 되는 좁은 가게 안에 사람들이 빼곡히 줄 서서 기다린다. '놀고 가 놀고 가 하고/ 붙잡아 당기는 여자들 있던'(고은 시 '군산 히빠리마찌') 대명동 히파리마치 골목 앞을 지나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군산역을 추억한다. 역사는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기차다. 그러나 우리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처럼 쿨쿨 잠을 잘 수만은 없다. 역사라는 기차는 시시각각 우리네 삶의 요건을 규정하며 달리기 때문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인가. 옛 역전 광장엔 두어 명의 아주머니가 좌판을 벌여놓고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며 쪼그리고 앉아 있다.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
군산 아귀찜은 달라!
된장국물에 아귀 졸이고 콩나물 대신 미나리 곁들여
◆ 맛집
우리나라에서 아귀 요리로 제일가는 군산,그중에서도 경장동 554의 7 군산시청 후문의 아귀찜 원조 경산옥(063-452-0565)의 아귀 요리는 손꼽을 만하다. 경산옥의 '군산식 아귀찜'은 마른 아귀를 콩나물 미나리와 함께 볶아내는 '마산식 아귀찜'과 달리 된장국물에 생물 아귀를 자작자작 졸인 위에 야채를 얹어낸다. 콩나물 대신 미나리와 부추,얇게 썬 양파가 올라간다. 간도 자극적이지 않고 양념도 그리 진하지 않지만 아귀의 선도가 워낙 좋아 훌륭한 맛을 낸다.
'아구찜인지 아귀찜인지/ 이 아귀세상/ 온갖 양념이 당신을 요리하는 세상이니/ 아구찜을 먹으세요,입 큰 고기/ 아귀처럼 아귀아귀 먹으세요/ 당신도 매운 사람이 되세요'(최승호 시 '아구찜 요리')라고 살은 몇 점 안 되고 양념만 벌건 아귀찜에 빗대어 세상을 풍자하는 시인도 있지만 세상의 '벌건 양념'에 대한 관용을 배우면서 아귀찜을 먹는 것도 적지 않이 세상 공부가 될 것이다. 아귀찜 5만원(중),아귀탕 1만원(1인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