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1928년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미누피야 지역 카프르 엘 무셀하에서 태어났다.1950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1969년부터 공군 참모총장을 맡았다.이후 제4차 중동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며 1974년 공군원수에 임명됐다.이듬해 무하마드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으로 발탁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1976년 당시 집권 여당인 국민민주당(NDP)의 부의장을 맡은 데 이어 1981년에는 의장에 올랐다.같은해 사다트가 이슬람주의자에 의해 암살되자 대통령직을 맡게 된다.이후 6년 임기의 대통령을 다섯번 연임했다.

무바라크는 같은 군인 출신이면서 전임 대통령인 가말 압둘 나세르는 물론 사다트와도 정통성면에서 차이가 난다는 평가를 받는다.나세르는 1958년 시리아와 통합 아랍공화국(UAR)을 세웠고 사다트는 1973년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큰 타격을 입히는 등 굵직한 역사적 업적을 내세워 이집트 국민의 정통성을 확보했지만 무바라크는 그러지 못했다.결국 무바라크의 통치 스타일은 전임 사다트 대통령을 따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친서방 외교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정적이나 야권을 내무부와 정보기관이 철저히 감시하는 권위주의 모델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무바라크는 군 출신 답게 일처리에 빈틈이 없고 추진력까지 갖춰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2인자’를 허용치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또 미국으로부터 매년 15억달러의 막대한 경제·군사 원조를 얻어낼만큼 외교력도 뛰어난 편이다.

하지만 낙제점을 받은 경제분야가 그를 결국 끌어내린 불씨가 됐다.지난해 이집트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은 각각 10%와 20%에 달했고 국민의 절반이 하루 2달러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