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역에서 북쪽으로 10분쯤 가면 무궁화스티커인쇄(대표 설진영 · 40)가 있다. 행정구역으론 성정동이다. 이 회사의 공장 안에 들어서면 인쇄기계가 쉴 새 없이 스티커를 찍어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인쇄물 스티커가 아니다.

간판 제품인 '책자라벨'을 보자.국내 최초로 국산화한 책자라벨은 라벨 자체가 하나의 책자다. 여러 장에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플라스틱 병속에 담긴 약을 보면 기존 제품은 기본 내용을 알려주는 스티커가 표면에 붙어 있고 설명서는 상자속에 들어 있다. 소비자들 중에는 상자와 설명서가 거추장스럽다며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 뒤늦게 어떤 내용을 확인하려다 보면 설명서가 없어 애를 태우곤 한다.

책자라벨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한 라벨이다. 종이가 최대 20쪽까지 부착돼 있다. 라벨 자체가 하나의 얇은 책자인 셈이다. 그 안에는 제품성분 제조과정 보관방법 복용방법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있다. 때로는 한글뿐 아니라 영어 일어 프랑스어 중국어로도 표기돼 있다. 라벨용지는 매우 얇은 종이로 돼 있어 두께를 느낄 수 없을 정도다. 한마디로 매끈한 라벨이지만 이를 얇게 한 겹씩 펼치면 내용을 볼 수 있다. 한쪽 끝은 고정돼 있어 책처럼 넘길 수 있고 다시 부착할 수 있다.

그동안 제약업체는 자동화공정에서 약품을 생산하면서 사용설명서는 수작업으로 상자에 담거나 고무줄로 병에 부착했다. 설명서를 삽입하는 일이 제품 생산보다 더 힘들다. 하루에 약품은 1만병을 만들면서 사용설명서는1000장밖에 처리하지 못한다면 완제의약품 생산성은 하루 1000병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별도 작업에 따른 비용 소요도 많다. 이를 해결한 게 바로 책자라벨이다. 자동화라인에서 라벨까지 달 수 있기 때문이다. 설진영 대표는 "제약업체와 소비자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설 대표는 이처럼 아이디어를 가미한 특수 스티커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책자라벨은 외국에서 생산됐는데 우리가 작년에 국산화했고 약 10개 제약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이중(二重)라벨도 만든다. 책자라벨과 비슷한 개념이다. 약품이나 화장품 식품용기에 부착하는 라벨로 2~3장으로 구성돼 있다. 설 대표는 "화장품의 경우 라벨 안에 상품설명과 전성분(全成分)을 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와인의 경우 고유 라벨에 '와인을 맛있게 즐기는 방법' 등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이중라벨은 복권용으로도 제작할 수 있다. 두 겹으로 된 복권스티커에 일련번호 행운번호 바코드 등을 인쇄할 수 있다. 설 대표는 "당첨 여부는 속지에 인쇄해서 각종 행사나 이벤트에 복권식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보안스티커 봉인스티커 등도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이 중 보안스티커는 휴대폰 노트북컴퓨터 디지털카메라 등 외부입력장치에 부착해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는 스티커다. 이를 떼어내면 마찰에 의해 스티커 표면에 'VOID'라는 문자나 점박이 무늬가 나타나 개봉 여부를 금방 알 수 있는 스티커다.

설 대표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체 공공기관 등에 출입하는 사람의 휴대폰이나 노트북 컴퓨터 등에 이를 부착하면 보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다양한 스티커를 개발하게 된 것은 설 대표의 도전의식 때문이다. 충남 대천 출신으로 청주대 광학공학과를 나온 설 대표는 학창시절 인쇄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무궁무진하게 많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인 1997년 말 천안에서 혼자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명은 기업을 잘 일궈 나라를 조금이라도 빛내야겠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무궁화스티커인쇄라는 이름으로 정했다. 무궁화는 엄연히 한국의 꽃이지만 사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있다며 가슴아프게 생각한 것이다. 그는 틈만 나면 태극기스티커를 나눠주는 이벤트도 벌이고 있다.

그가 책자라벨이나 이중라벨을 개발한 것도 외국제품 수입에만 의존하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산화에 나섰다. 이렇게 각종 특수 스티커를 개발하는 게 그의 취미이자 관심사였다. 그는 최고경영자로 모든 업무를 관장하지만 무엇보다 개발에 심혈을 쏟는다.

그는 3건의 특허를 등록하고 10여건의 특허와 실용신안을 출원하는 등 약 20건의 지식재산권을 등록했거나 출원했다. 해외에서 먼저 만들어진 것은 제조공법 등을 새로 개발했다. 이 중에는 복사용지지만 그 안에 매우 얇은 금속박판이 들어있어 이 용지에 기밀내용을 복사한 뒤 외부로 갖고 나갈 경우 금속탐지기로 잡아낼 수 있는 특수 보안용지도 있다. "그동안 휴대폰 USB 디지털카메라 등에 대한 보안은 강화되고 있지만 복사용지는 체크하기 힘들어 이를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개봉이 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보안스티커와 외력감지스티커에 대해서도 특허를 얻었다. 아울러 △온도 변화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변신스티커 △메시지보호스티커 △필기가능스티커 △경품이벤트용 라벨 △보안용지를 갖춘 책자 등에 대해서도 특허를 출원했다.

이 회사는 직원이 17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지만 거래했거나 거래 중인 곳은 국방 관련 기관과 중소기업청 등 관공서와 삼성전자 삼성SDI 하이닉스반도체 한국하니웰 롯데리아 제일제당 국민은행 농협 웅진코웨이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라고 밝혔다.

설 대표는 이제 한지(韓紙)라벨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한지는 한국의 멋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제품인데 이를 라벨로 만들어 전통주나 전통식품 화장품 공예품 등의 라벨로 활용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개발은 이미 마쳤고 현장에서 소비자 반응을 점검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신제품과 수입대체품을 개발해 내수에만 주력해 왔는데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일본시장 개척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한지라벨은 특이한 문양과 질감 때문에 한국인보다 일본인 등 외국인들이 더 좋아한다"며 "한지라벨과 기존 제품으로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걸 생각"이라고 말했다.

천안=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