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ML클래스를 타는 자영업자 김모씨는 며칠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출근을 위해 여러 차례 자동차 키를 돌려봤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정비소 직원이 지목한 김씨 차량의 고장 원인은 다름아닌 강추위였다.

ML클래스와 같은 경유 차량은 가솔린 차량과 달리 연료가 필터를 통과한 후 엔진으로 분사된다. 경유는 온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갈 때 끈적끈적한 성질의 왁스 성분이 생기는데 이 성분이 필터에 끼면서 시동을 방해한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연료통에서 엔진으로 이어지는 관에 열선을 설치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경유차 왁싱 현상을 막고 있지만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5~20도 수준까지 떨어지면 차가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세 연료필터를 쓰는 고급 수입 경유차에서 주로 왁싱현상이 나타난다"며 "국산 경유차는 수입차와 연료 필터 규격이 달라 왁싱 현상이 덜하다"라고 말했다.

수입차 업체들은 국내에서 판매되는 경유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독일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독일 북부 지방도 서울 못지않게 겨울이 춥지만 왁싱 현상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드물다"고 설명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매년 동절기마다 왁스 성분이 생기는 유동점을 영하 16도 이하로 낮추기 위해 가정용 등유를 일정 비율 섞어 만든 겨울철용 경유를 판매하고 있다. 영하 20도 이하를 밑도는 날들이 흔한 일부 지역엔 유동점을 24도까지 내린 혹한기용 경유를 공급 중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가정용 등유도 수요가 달리기 때문에 혹한기용 경유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주유소가 있을 수 있다"며 "혹한기용 경유인지를 꼭 확인하고 주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형석/이정호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