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한화그룹 수사가 끝났다. 지난해 9월 초 수사가 시작된 지 5개월 만이다. 수사는 의욕적으로 시작됐다. 검찰 내에서 '정통 칼잡이'로 통하는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이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이번 수사는 검찰에도,기업에도 깊은 상처만 남겼다는 평가다. 남 지검장은 한화 수사와 관련해 옷을 벗었고 한화그룹은 장기간 수사로 그룹 경영계획을 제대로 확정조차 못했다.


◆"차명비리와의 싸움이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원곤)는 30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전 · 현직 임원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조세 포탈 23억원,업무상 횡령 1889억원,업무상 배임 2967억원,주가조작 7억8000만원 등 그룹에 4856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김 회장에 대해 '범행을 총괄 지휘하고 범죄수익 대부분을 향유했다'며 업무상 횡령과 배임,조세포탈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홍동옥 전 그룹 CFO 및 김현중 한화건설 대표,김관수 한화이글스 대표,김모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등을 김 회장의 공범으로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3~2010년 사이 차명계좌 382개를 통해 정체불명의 자금을 관리하면서 양도소득세 23억원 포탈 △김 회장 일가가 소유한 차명회사 13개의 채무 3500억원을 그룹 계열사들이 변제 △김 회장의 장남 동관씨 등에게 한화S&C 주식 저가 매각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봉욱 차장검사는 "이번 수사는 차명회사와 차명계좌 등 차명비리와의 싸움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재판에서 혐의를 다퉈 보겠다"

한화그룹은 검찰의 혐의발표에 대해 "재판과정에서 다퉈 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화는 차명계좌를 통한 자금관리 혐의와 관련해 차명계좌 개수는 중복계산으로 부풀려졌으며 불법행위로 조성된 자금은 없다고 반박했다. 양도소득세 23억원 포탈에 대해서는 누락된 세금 전액을 납부했다고 설명했다. 또 차명회사 채무를 그룹계열사들이 대신 갚아줬다는 부분에 대해선 보증을 선 그룹계열사들의 손해를 막기 위한 경영상의 판단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의 장남 동관씨의 S&C 주식 저가 매도에 대해서도 한화 측은 주가는 미래현금흐름 할인가치평가법(DCF)으로 정당하게 산출된 것이라고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모두가 졌다"

검찰과 한화는 5개월간 처절하게 싸웠다. 김 회장은 검찰에 출두하면서 "이건 조금 심한 것 아니냐"고 검찰에 일격을 가했고 검찰은 전방위 수사로 압박을 가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를 시작으로 25개 그룹계열사와 관계사를 압수수색했다. 소환 조사한 임직원 수는 321명에 달했다.

김 회장도 세 차례나 불러들였다. 수사진은 의혹의 '키맨'인 홍 전 CFO 등 주요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재청구까지 했다.

하지만 수사총책임자인 남 지검장의 저인망식 압수수색과 별건수사 논란,잇따른 영장 기각은 검찰 내부는 물론 재계에서 "오기로 수사하는가"라는 비판을 샀다. 결국 검찰은 남 지검장의 사퇴와 구속자 없는 수사 결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한화 역시 큰 상처를 입었다. 그룹 회장이 검찰에 불려다니고 300명이 넘는 임직원이 소환당하면서 기업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새해까지 이어진 검찰의 수사로 투자를 미뤄야 하는 등 경영계획 수립에 차질을 빚었다"는 한화 측의 반응이 엄살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한화는 매년 연말 그룹인사를 단행했으나 올해엔 명단조차 짜지 못한 상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