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쇠망 원인을 이처럼 밀도 있게 파헤치다니.경제사 문화사 언론사 의료사 등이 총동원됐는데 읽는 재미를 말로 다 못한다. 방대한 분량인데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이유가 뭘까. 《제국의 황혼》에 수록된 242편의 글은 하나하나 독립된 테마다. 그래서 쉽게 읽힌다. 그러면서 각각의 스토리가 대하(大河)를 이룬다. 잘 써진 역사책으로 봐도 손색 없다.

이 책의 부제는 '대한제국 최후의 1년'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경술국치 1년 전으로 되돌려 나라가 망하던 그날까지 365일간의 기록이다. 각계 전문가 19명이 재현한 당시의 삶은 그야말로 리얼하다. 궁궐에 갇혀 있던 고종부터 시골장터의 아낙네들의 숨소리까지 담았다. 이들에게 과연 망국의 예감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1905년 당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는 뉴스메이커였다. 그녀가 조선에 왔을 때 고종은 극진히 환대했다. 신생 제국의 영애(令愛)라서가 아니다. 고종은 미국의 거중조정(good offices)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후 조선은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앨리스가 오기 전에 미국은 일본에 한국의 침탈권을 이미 인정했던 터였지만 고종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임치정 이교담은 당시 대한매일신보에 근무했던 언론인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신문을 통해 항일운동을 하다가 결국 무장투쟁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당시 지식인의 절박한 모습을 방증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친일 매국노들은 어떠했는가. 고종의 5촌 조카였던 이지용은 박의병 김승규 민영린 등과 밤낮없이 화투판을 벌였다. 판돈은 한일의정서 조인 대가로 받은 1만원이었다. 최영년 가족의 행각도 가관이다. 1910년 2월6일자 대한매일신보에 따르면 최영년은 한 · 일 강제병합 앞잡이 노릇을 했고 그의 아들 최영식은 소학교 친구들을 꾀어 창씨개명을 하게 했다. 또 다른 아들 최찬식은 친일작가였다.

이런 와중에도 민초들의 저항은 더욱 거셌다. 소금값을 내놓으라고 일본 공사에게 호통 친 소금장수 김두원,일본 기마부대와 맞선 전라도 익산의 의병장 이규홍,평북 용천에서 일본인 세무서장을 혼낸 상인들….이들 얘기를 발굴해 낸 게 바로 이 책의 미덕이다.

"황실은 황실의 안위를,양반은 가문의 안위만을 생각했다. 적어도 강제병합 당시만 보자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었다"는 저자들의 진단은 당연하다. 다만 "나라가 망하자 순국 자결하는 이가 속출하지 않았는가"라는 말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앞서 밝혔듯이 이 책은 역사라는 종합병원의 각 분야 전문의들이 1세기 전에 사망한 시신을 부검하는 공동 프로젝트다. 망국으로 치닫는 대한제국 마지막 1년 동안 황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생각하고,무슨 희망과 목표로 투쟁했는지 돋보기를 들이댔다. 그렇다면 이 책의 출간 의도는 자명하지 않은가. 다시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지 말자는 것,건강한 나라로 영생하자는 것이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