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운이 일반 개인 주주로부터 증자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갑자기 법원에 기업 회생절차(옛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회사 측은 "파국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했지만 당장 주식 거래가 정지된 투자자들은 "경영진이 회사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내 4위인 대한해운의 회생절차 신청에 해운업계도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용선 중심 사업구조의 한계

전문가들은 대한해운이 궁지에 몰린 것은 여러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글로벌 해운 호황 때 '용선 후 대선'이라는 낡은 사업 관행에 집착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9년 대한해운의 전체 매출 가운데 용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77.3%에 달했다. 해운업이라는 본업 대신에 선박 대여라는 부업에 더 매달렸다는 얘기다.

대선 사업 외에 대한해운의 주력 사업인 벌크선 영업도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중국이라는 변수가 결정타였다. 중국은 철광석 석탄 등 원자재 수요가 많아 벌크선들이 숱하게 드나들던 지역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작년부터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철강업체들을 통폐합하는 등 원자재 수입을 대폭 줄였다"며 "이때부터 벌크선 업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증자 후 법정관리 신청 논란

사정이 어렵긴 했지만 대한해운은 작년 10월 이사회 결의로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을 때만 해도 재기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자산 매각,회사채 발행 등으로 10억달러가량을 조달했고,증자로 추가 자금을 모아 채무를 청산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벌크선 영업(대한해운의 주력 사업)의 시황 지표인 BDI도 9월 중순 2995로 연간 최고치를 기록하고,11월 초까지도 2500 선을 유지했다. 대한해운 관계자는 "주가도 견조해 10월 이사회 결의 때는 유상증자를 통해 12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유상증자 발표 후 12월 말 실제 증자를 실행하기까지 약 두 달 동안 대한해운이 처한 경영 환경이 급변했다. BDI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증자일을 며칠 앞둔 12월17일엔 급기야 2000 밑으로 떨어지면서 주가도 추락했다. 한때 6만원이었던 주가가 2만5000원대로 떨어지면서 대한해운이 증자로 조달한 자금은 866억원에 불과했다. 당초 계획 대비 300억원 넘게 차질을 빚은 셈이다.

증자 이후에도 빚 독촉은 계속됐다. 대한해운 관계자는 "작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용선료 지급으로 나간 돈이 1억달러를 넘었다"며 "작년 말에 남아 있던 현금 1억1000만달러를 모두 채무 변제에 사용하고도 돈이 모자라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대한해운으로선 금융권 대출이 불가피했다. 대출을 시도했지만 은행 측이 선주와의 용선료 인하 협상을 강하게 요구했고,대한해운은 선주들과의 협상에 실패하면서 대출 역시 무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런 법정관리 신청으로 피해를 입게 될 소액주주들의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이진방 대한해운 회장은 "회사가 이처럼 어렵게 된 것은 모두 나의 책임"이라며 "올해 안에 재무구조를 개선하면 회사가 살아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최대주주(20.45%)인 이 회장을 비롯해 대한해운 사원들도 유상증자 당시 수십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이로써 2008년 글로벌 경기 침체 이후 국내 선사 가운데 법정관리를 신청한 업체는 삼선로직스,대우로지스틱스,티피씨코리아,세림오션쉬핑,봉신(옛 선우ST) 등 6개로 늘었다.

박동휘/장창민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