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자로 인문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기업경영 전반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줘 '한국의 피터 드러커'로 불린다. 1940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대전고와 서울대(독어독문학 · 물리학)를 졸업했다. 1963년 미국 유학을 떠나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전기공학으로 박사,경영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이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윤석철 교수가 여러 방면의 공부를 하게 된 출발점이었다. 독일의 경제발전 모델을 배우고 싶어 독어독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 발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물리학과 전기공학을 공부했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 유학 시절 만난 한국 기업인들로부터 '경영학을 공부해 기업을 도와달라'는 말을 자주 들은 것이 경영학으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 윤 교수는 "내 의지보다는 국가와 사회의 필요에 따라 전공 분야를 결정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기특하다"고 회고했다. 2005년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정년 퇴임하고 한양대 경영대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양대 경영대학 4층에 있는 윤석철 석좌교수(71 · 서울대 명예교수)의 연구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두루 섭렵한 경영학 대가의 연구실 치고는 간소했다. 그의 연구실은 빽빽한 책꽂이가 삼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여느 교수 연구실과 달리 5단 책장 하나만 한쪽 벽에 서 있었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 옆에 교내 소식지 한 부만 놓여 있었다.

"연구실이 참 깔끔하다"는 말에 윤 교수는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간결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이 방황하는 것은 가치관에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고,기업이 실패하는 것도 경영 이념과 목표를 간결하게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간결함을 추구하라'는 것은 지난 10일 출간된 윤 교수의 저서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경영학적 사고의 틀'(1981),'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1991),'경영학의 진리체계'(2001)에 이어 10년 만에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책 '삶의 정도'를 펴낸 윤 교수를 만났다.

▼'삶의 정도'라는 제목은 철학에 관한 책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인간과 사회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경영학은 철학과 다를 게 없습니다. 흔히 경영학이라고 하면 기업 경영만을 생각하지만 개인의 삶에도 경영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는 것은 한국인들이 개인 경영에 실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것도 결국 경영입니다. 이 세상에 경영학의 대상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

▼10년마다 한 권씩 책을 내셨습니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책을 내는 이유가 있습니까.

"강의에 사용하는 교재는 일정한 주기 없이 필요할 때마다 냈습니다. 다만 충분한 사색과 연구 과정을 거쳐 독자적 창조성을 담은 책을 내는 데는 좀더 시간이 걸립니다. "

▼'삶의 정도'에서 간결함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하셨는데요.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인간과 기업이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말한다면 엔트로피,즉 무질서가 증가하는 것이죠.현상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해법을 찾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중요한 것을 찾아내고,덜 중요한 것은 버려 문제를 간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

▼기업 경영에도 간결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조직이 복잡해질수록 의사 결정의 속도가 느려지는 사례가 많습니다. 간결화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경영자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의사결정을 계속 미루게 되죠."

▼선택과 포기를 분명히 하라는 것은 기업이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핵심을 어떻게 정의하는가가 중요합니다. 핵심이라는 것 자체가 시대 변화와 소비자 기호에 따라 달라집니다. 핵심을 끊임없이 재정의해야 합니다. 과거에 핵심이었던 것이 지금은 핵심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핵심으로 떠오르는 것도 있습니다. 더 이상 핵심이 아닌 것을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역량을 집중한다면 결국 핵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

▼단기적인 매출 확대와 장기적인 브랜드 구축처럼 동시 달성이 힘든 과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상반되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단단함을 얻으려면 유연성을 포기해야 하고,유연성을 위해서는 단단함을 버려야 하는 것이 자연의 원리입니다. 최근 거듭 문제가 되고 있는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논란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고위 공직자로서 명예를 누리고 싶다면 국민의 불신을 받을 만한 일은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국민의 존경과 물질적인 부(富)를 모두 얻으려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

▼독문학과 물리학으로 학사,전기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학문적 배경이 경영학 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학문의 진정한 가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있습니다. 문제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상호 연결이 심오해진 오늘날에는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방법만 갖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현상으로 나타난 문제는 하나라 하더라도 그 구조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여러 각도에서 문제를 보고 해답을 구하는 통섭(統攝)의 방법론이 필요하죠."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생존 부등식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생존 부등식이란 소비자가 느끼는 제품의 가치가 가격보다 커야 하고,가격은 생산자가 부담하는 원가보다 커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는 가치에서 가격을 뺀 만큼을 순가치로 얻고,생산자는 가격에서 원가를 뺀 만큼의 순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은 납품하는 중소기업에 원가를 넘는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받는 가격을 뛰어넘는 가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만약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깎으려고만 한다면 단기적인 이익 극대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장기적인 이익을 누리려면 생존 부등식의 관계를 지켜야 합니다. "

▼가격을 초과하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말에서는 스타벅스나 애플의 성공이 연상됩니다.

"애플의 성공이 한국의 제조업 기업들에 충격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도 가격을 뛰어넘는 가치를 제공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의 일류 기업에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적인 인물은 없을지 몰라도 그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안정성과 영속성 면에서는 개인보다 시스템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 더 낫죠."

▼노사 관계의 해법도 생존 부등식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등식은 양자가 똑같이 주고받아야 한다고 가정하는 것이지만 생존 부등식은 다릅니다. 내가 받은 것 이상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생존 부등식이죠.노사 관계를 비롯한 인사 관리는 인간을 다루는 문제라는 점에서 경영자는 우선 인간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한국판 저커버그'를 키우겠다는 말을 했지만 한국적 풍토에서 혁신적인 청년 기업가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올림픽 양궁에서 금메달을 가장 많이 딴 나라는 한국입니다. 하지만 올림픽 성화 점화에 가장 먼저 불화살을 이용한 나라는 스페인입니다. 한국은 활을 잘 쏘면서도 활을 쏴서 성화에 불을 붙인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했죠.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는 그 전 세대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저커버그와 같은 청년 기업가가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

▼중국이 미국에 필적하는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지는 않을까요.

"괴테와 실러는 19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대문호입니다. 누군가 괴테에게 '당신과 실러 중 누가 더 뛰어난 작가냐'고 물었는데,괴테는 '더 뛰어난 한 사람보다 누가 더 뛰어난지를 모르는 두 사람을 갖는 것이 더 좋지 않느냐'고 답했다고 합니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두 나라 모두를 우방으로 삼으려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

▼다음 10년의 연구 주제는 무엇입니까.

"나이가 70을 넘으면서 10년 뒤 어떤 책을 내겠다는 약속은 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약속은 인간을 구속하지만 약속을 할 수 없을 때 삶은 슬퍼집니다. 학자로서 걸어온 길을 완성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