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발생한 여수 산업단지의 갑작스런 정전 사고 책임을 놓고 한국전력과 GS칼텍스 등 입주업체들 간 날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한전은 사고 원인에 대한 말을 바꾸며 입주 업체에 책임을 돌리고 있는 반면 피해 업체들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한전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여수화력발전소 내 가스개폐기로 보이는 장치가 검게 그을린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며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규제개혁추진단이 19일 한전에 정전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도록 약관을 고치기로 한 것과 관련,피해 업체들은 이번 정전 사고처리 과정에 바로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전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여수산업단지 석유화학 공장들의 정전은 (전기를 공급받는 기업들이) 순간전압 강하에 대한 보호설비를 갖추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전은 "순간전압 강하로 인한 전력공급 중단을 막기 위해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나 순간전압강하보상장치 등 다양한 보호설비가 있다"며 "세계적으로 전력회사에서 이런 보호 설비를 갖춰 전기를 공급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보호 설비를 갖춰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이번 정전이 발생했다는 논리다.

한전은 또 "전기 설비는 대부분 외부에 노출돼 있어 낙뢰 폭설 태풍과 같은 자연 현상이나 외부 물체와의 접촉에 의해 0.1초 이하로 순간 전압이 떨어지는 현상이 불가피하다"며 "(기업들은) 전기는 항상 중단 없이 공급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 품질까지 관심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기업 책임론을 폈다.

이에 대해 피해를 본 석유화학 업체들은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는 한전이 책임을 오히려 기업들에 돌리고 있다며 반발했다. 한 피해업체 관계자는 "발전소 내 폭발사고에 대해 목격자의 증언도 있지만 한전 측은 정전 사고의 원인에 대해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피해를 본 기업들이 예방설비를 갖추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전 측이 사고 첫날 여수화력발전소와 용성변전소 사이의 선로에서 순간전압 강하현상이 발생했다고 발표한 뒤 왜 그 같은 현상이 생겼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이 책임을 피하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GS칼텍스 관계자는 "한전 측은 순간전압 강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고 원인은 내부 폭발"이라며 "순간전압 강하 땐 작동하지 않는 한전 측 선로 보호용 기계가 열리며 전기가 끊겼다"고 반박했다. 보호설비 보유 여부에 대해서도 "핵심설비에 대해선 UPS 등 비상장치를 갖추고 있지만 순간적인 정전에서만 제 기능을 한다"며 "이번 사고처럼 정전이 몇 초가 아닌 20분 이상 이어지면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여수산단의 정전 원인과 피해액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조사단은 지난 17일 발생한 정전으로 사흘째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된 GS칼텍스와 삼남석유화학 등 3~4곳을 비롯해 현재 정상 가동 중인 나머지 20여개 업체 등을 대상으로 정확한 피해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조재희/주용석 기자 joyjay@hankyung.com


◆ UPS

uninterruptible power supply. 무정전 전원공급장치로 갑작스런 정전이나 과도한 전압 등으로 인한 전기 공급의 이상을 방지하고 안정된 전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정전사고를 예방하는 기능을 주로 맡으며 최근 들어선 원격 진단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