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선,벌크선,유조선(VLCC),케미컬선박'.

2006년 4월 한국의 고기잡이배 동원호가 납치된 이후 한국인이 승선한 선박이 해외에서 납치당한 건수는 지난 15일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포함해 모두 8건.이들 피랍 선박은 속도가 15노트(시속 27㎞) 이하로 느리고 짐을 실었을 때 수면에서 선상까지의 높이(건현)가 낮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조봉기 한국선주협회 해무팀장(부장)은 "선박의 목적과 경제성을 따져 속도보다는 화물을 더 많이 싣는 데 맞춰 설계된 느림보 선박들이 해적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속 27㎞ 이하면 당한다.

그동안 납치된 선박은 최고 속도가 15노트 이하이고 건현이 4m에서 8m정도.아덴만 등을 근거지로 선박납치를 일삼는 해적선들의 속도는 15노트다. 해적선은 망망대해에서 이들 선박을 쉽게 따라잡고 수월하게 배에 오를 수 있다. 18일 삼호주얼리 피랍을 계기로 국토해양부가 마련한 긴급 선사 사장단 회의에서 최대 속도 15노트 이하,건현 8m 이하 선박에 보안요원 의무 승선이 안건으로 다뤄진 것도 이런 취약점 때문.

해적선의 주 타깃이 되는 선박은 속도보다는 짐을 많이 싣는 데 맞춰 설계된 벌크선이나 유조선,화학(케미컬) 선박이다. 유조선은 기름 한방울이라도 더 싣도록 만들어진다. 외형이 뚱뚱해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케미컬선박도 짐을 가득 실었을 때 수면에서 선상까지의 높이가 3~4m에 불과하다.

◆컨船 '속도',카 캐리어는 '높이'로 무장

정기선인 컨테이너선과 차량을 실어나르는 카 캐리어,LNG선은 피랍된 사례가 없다. '스피드'와 '높이'가 무기다. 컨테이너선은 최대 속도가 23노트(시속 51.4㎞)로 화물선 가운데 가장 빠르다. 해적선이 쫓아갈 엄두를 못 낸다.

카 캐리어는 높이로 무장했다. 30m 높이의 주차빌딩이 선상에 빼곡히 쌓여 있다고 상상하면 된다. 최대 18노트(시속 32.4㎞)로 속도도 느리지 않다. LNG선은 수송 중에 가스가 하늘로 날아가기 때문에 속도가 경제성을 좌우한다. 20노트(시속 36㎞)로 달리는 이유다. 배 높이도 10m 이상이어서 해적의 접근이 역시 쉽지 않다.

안계혁 대한해운 홍보상무는 "유조선이나 벌크선 등에 고속 엔진을 달면 해적선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지만 속도를 높이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중소 해운사는 건당 5만달러 이상 드는 보안요원 승선도 버거운데 엔진 교체는 엄두도 못 낸다"고 설명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