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선입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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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 때론 좋은 기회를 잃게 하기도 한다. 고객 한 분 한 분이 중요한 미술품 경매의 특성상 선입견은 버려야 할 대상이다.
내가 아는 고객 중 노부부 소장가가 계신다. 이분들은 역사 미술 철학에 해박해 전시장에서 혹시라도 만나 뵙게 되면 항상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신다. 노부부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그분들의 품성 만큼 깊이가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노부부는 전시장을 방문할 때 항상 사모님이 손수 경차를 운전하고 오신다. 만약 차를 보고 사람을 판단했다면 우리는 소중한 고객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미술품 경매에서 최고 가격에 낙찰된 작품은 이중섭의 유화 '황소'다. 무려 35억6000만원에 팔려 한국 미술품 경매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낙찰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이 경매에 나오게 된 계기는 우리 회사에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외출 후 돌아와 보니 사무실 책상 위에 메모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우리 회사는 늘 작품과 관련해 많은 문의전화가 걸려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경매대상이 되지 않는 작품들이다. 나는 메모를 전해 받고 이 전화도 그런 전화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전화를 주신분은 소장가도 아니고 소장가의 지인이셨다. 게다가 의뢰를 부탁한 작품은 다름 아닌 이중섭의 황소였다. 이중섭의 황소라면 한국 근대미술의 기념비적인 작품이고 지난 10년간 한 번도 경매시장에 나오지 않은 귀한 것인데 그런 작품이 이런 식으로 의뢰가 오다니 덜컥 의심이 났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고가 작품일수록 경매 위탁은 지인들의 소개나 기존 고객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작품을 한번 보고 싶었다. 작품은 서울 외곽의 한 은행에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중섭 황소 작품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왕 속은 셈 치고 한번 가보자는 심정으로 약속을 잡았다. 수많은 간인들이 찍힌 오동나무 상자가 은행금고에서 나왔다. 상자를 여니 일반 포장지에 싸인 액자가 하나 나왔다. 포장지 위에도 수많은 간인이 찍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필자가 그동안 보아왔던 방법으로 작품을 보관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난 순간 실망스러웠다. 같이 간 직원의 눈빛도 흐려졌다. 그러나 잠시 후 작품이 실체를 드러냈다. 난 그 순간의 희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대지를 박차고 앞으로 전진하는 황소의 기상을 특유의 속도감 있는 선으로 보여준 이중섭의 수작이었다. 이 작품이 1972년 이후 거의 4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중섭의 작품이 경매된 후 나에게 처음 전화를 주신분께 조심스레 여쭤봤다. 만약 그때 우리가 전화를 안 드렸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분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허허,그거 당신들 복이에요. "
이학준 < 서울옥션 대표 junlee@seoulauction.com >
내가 아는 고객 중 노부부 소장가가 계신다. 이분들은 역사 미술 철학에 해박해 전시장에서 혹시라도 만나 뵙게 되면 항상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신다. 노부부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그분들의 품성 만큼 깊이가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노부부는 전시장을 방문할 때 항상 사모님이 손수 경차를 운전하고 오신다. 만약 차를 보고 사람을 판단했다면 우리는 소중한 고객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미술품 경매에서 최고 가격에 낙찰된 작품은 이중섭의 유화 '황소'다. 무려 35억6000만원에 팔려 한국 미술품 경매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낙찰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이 경매에 나오게 된 계기는 우리 회사에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외출 후 돌아와 보니 사무실 책상 위에 메모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우리 회사는 늘 작품과 관련해 많은 문의전화가 걸려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경매대상이 되지 않는 작품들이다. 나는 메모를 전해 받고 이 전화도 그런 전화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전화를 주신분은 소장가도 아니고 소장가의 지인이셨다. 게다가 의뢰를 부탁한 작품은 다름 아닌 이중섭의 황소였다. 이중섭의 황소라면 한국 근대미술의 기념비적인 작품이고 지난 10년간 한 번도 경매시장에 나오지 않은 귀한 것인데 그런 작품이 이런 식으로 의뢰가 오다니 덜컥 의심이 났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고가 작품일수록 경매 위탁은 지인들의 소개나 기존 고객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작품을 한번 보고 싶었다. 작품은 서울 외곽의 한 은행에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중섭 황소 작품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왕 속은 셈 치고 한번 가보자는 심정으로 약속을 잡았다. 수많은 간인들이 찍힌 오동나무 상자가 은행금고에서 나왔다. 상자를 여니 일반 포장지에 싸인 액자가 하나 나왔다. 포장지 위에도 수많은 간인이 찍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필자가 그동안 보아왔던 방법으로 작품을 보관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난 순간 실망스러웠다. 같이 간 직원의 눈빛도 흐려졌다. 그러나 잠시 후 작품이 실체를 드러냈다. 난 그 순간의 희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대지를 박차고 앞으로 전진하는 황소의 기상을 특유의 속도감 있는 선으로 보여준 이중섭의 수작이었다. 이 작품이 1972년 이후 거의 4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중섭의 작품이 경매된 후 나에게 처음 전화를 주신분께 조심스레 여쭤봤다. 만약 그때 우리가 전화를 안 드렸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분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허허,그거 당신들 복이에요. "
이학준 < 서울옥션 대표 junlee@seoulauctio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