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74)와 2008년 수상자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0)의 소설이 문학동네에서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 두 거장은 전쟁이나 독재정권,남미혁명 등 20세기의 굵직한 사건들과 맞부딪친 개인의 이면을 깊숙하게 들여다본다. 작가의 명성만큼이나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미의 대표적인 소설가 바르가스 요사의 2006년작 《나쁜 소녀의 짓궂음》은 독특한 사랑 이야기다. 한때 정치가로 변신해 페루 대선에도 출마했던 바르가스 요사는 조국에 대한 정치 · 사회적 의식을 강하게 드러낸 작품들을 써왔지만 이번에는 범위를 유럽과 동양으로 확장했다.

1950년 여름 페루 리마의 중산층 동네 알레그레에 사는 열다섯 살의 리카르도는 칠레에서 온 자매 중 언니인 릴리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그녀는 무성한 소문만 남긴 채 사라진다.

페루에서 대학을 졸업한 리카르도는 1960년대 파리에서 번역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페루혁명에 가담하러 파리에 온 게릴라 전사 아를레테가 릴리임을 알아챈다. 이후 리카르도는 프랑스 외교관과 영국 사업가의 부인,일본 야쿠자 우두머리의 애인으로 살아가는 릴리를 런던과 도쿄,마드리드에서 만나고 또 헤어진다.

남미 독재정권에 대한 절망감,히피 문화와 구조주의의 태동,에이즈의 발견,냉전시대의 종말 등 급변하는 20세기의 사회 · 정치 · 문화적 통사(通史)를 '나쁜 여자아이'와 '착한 남자아이'의 40년에 걸친 사랑 이야기와 정교하게 직조해낸 작품이다.

르 클레지오의 《허기의 간주곡》은 2008년 가을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다. 특히 그가 서울에 체류하면서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국내 팬들의 관심을 모은다.

이 소설은 남성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물질문명을 반성하고 지성과 시적 감수성에서 인간성을 발견하는 르 클레지오의 작품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많은 아이디어를 가족사에서 가져왔듯이 이번에도 어머니를 모델로 여주인공 에텔을 창조했다. 열 살 소녀 에텔이 1930년대 초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유럽 한복판에서 집안의 파산과 전쟁,배고픔을 견디며 강인한 여성으로 성장하는 내용이다.

작가는 친구 제니아에게 말하는 에텔의 입을 빌려 "우리는 스스로 역사를 선택하지 않으며 그것을 거부해서도,거부할 수도 없다"고 얘기한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