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관(官)은 치(治)하려고 있다"고 되받아쳤던 김석동 신임 금융위원장의 취임 일성은 시장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김 위원장의 이날 취임사는 7년 전 '관치의 원조'라 불릴 만한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취임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금융위 안팎과 시장에선 '이헌재의 데자뷔'가 출현했다는 말이 회자됐다. 데자뷔(Deja Vu)는 프랑스어로 처음 보는 대상에서 이전에 본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김 위원장의 공직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이 전 부총리는 2004년 2월 재정경제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시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내키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시장이 깨지든 말든 내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억지나 불장난이 용납돼서는 안 된다"며 시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신용카드 부실 사태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서로 손해를 보지 않겠다며 책임을 회피한 금융사들의 방만함을 질타하면서 시장규율 확립을 강조했다.

이 전 부총리는 취임한 지 한 달이 안 된 2004년 3월 '이헌재 사단'의 핵심 멤버로 분류됐던 김석동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으로 불러들여 '관치'를 맡겼다.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데 김 위원장만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년 뒤 이명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금융위원장으로 복귀한 김 위원장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과 가계대출 증가 문제,글로벌 경쟁력 부재 등 많은 과제가 압축파일처럼 쌓여 있다"며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금융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취임 연설에서도 '시장 개입을 통한 불안요소 제거'에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과감하고 단호한 실행 능력을 강조하며 "현장과 호흡해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상황을 장악해야 한다. 정면대결해야 승부가 나고,그래야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독려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책임하에 과감한 결단도 피하지 말라"며 "모든 책임은 나에게 돌리면 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현대건설 매각과 관련한 혼선에 대해서도 "채권단이 스스로 채권 확보는 물론 기업이 제대로 성장할지 판단해 결정할 일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채권단이 책임성 있게 행동하고 신뢰를 주는 것"이라고 책임 소재가 채권단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에 대해서는 "(정부가 주주인 만큼) 돈을 많이 받아야 하지만 그 회사가 잘돼야 한다"며 "미래가 잘 보장되도록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대해서는 "도망가면서 처리하진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류시훈/이상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