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부이촌동 점보아파트 전용 175㎡형에 살고 있는 황철수씨(42)는 지난 8월 집주인으로부터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2년 전 3억5000만원이던 보증금을 4억500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인근 중개업소는 "렉스아파트 주민들이 재건축으로 이주하면서 전셋값이 크게 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등학생 아이를 전학시키기 어려워 은행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올려줬다.

서울 인기 주거지역에서 '재건축 단지 이주'가 전세시장의 새 변수가 될 전망이다. 동부이촌동처럼 강남권의 재건축 이주에 전세수요가 본격적으로 생겨서다. 전문가들은 "입주물량이 줄어드는데다 재건축 · 재개발 이주에 따른 수요가 많아 전세난이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치동 청실,논현동 경복 이주 시작

학원 1번가로 꼽히는 서울 대치동에선 청실1 · 2차가 이르면 오는 6월께 이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지난 2일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데 이어 3월께 관리처분 총회를 거치면 이주 일정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청실1 · 2차는 1378채 대단지여서 전세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인근 중개업소들은 예상했다. 김정원 신대치공인 사장은 "3억원대 전세가 가능한 아파트가 주변에 드물어 청실 이주자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며 "신규전입 수요까지 맞물려 3억~4억원대 전세물건 품귀 현상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달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논현동 경복아파트(308채)도 오는 8월 이주를 목표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고령자를 제외하고는 자녀교육 때문에 멀리가기 힘들다"며 "전셋값이 비슷한 대치동 은마 등의 가격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신1차 · 대림도 촉각

학군이 좋은 곳으로 꼽히는 반포 · 잠원동에서도 재건축 이주가 시작된다. 이주를 위한 관리처분 단계까지 사업을 진행했던 한신1차와 대림이 용적률 상향조정 절차를 밟은 뒤 하반기 조합원 이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 일대 전셋값은 하반기 5000만원 정도 뛰어 전용면적 85㎡ 복도식이 3억~3억5000만원,계단식이 4억~4억5000만원 선이다. 로얄공인 관계자는 "전세매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주가 시작되면 전세가격도 더 오를 것"이라며 "여름방학 학군 수요와 재건축 이주가 맞물리면서 상승폭도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덕동 대규모 이주 시작

7개단지 1만채가량의 저층 재건축단지가 밀집한 고덕동에서도 오는 하반기 이주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고덕지구에선 고덕시영 고덕주공 2 · 3 · 4 · 7단지가 연말 무더기로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조합들은 모두 상반기 중 사업시행인가 및 관리처분계획 승인을 받아 하반기 이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인근 중개업소들은 조합원 간 내분이 비교적 적은 고덕시영 고덕주공4 · 7단지 등이 이주 단계까지 갈 것으로 전망했다.

고덕동 아침공인의 서문경이 사장은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면 1억원 이하로 전세를 구할 수 있는 아파트가 줄어들게 된다"며 "자녀교육 등으로 근처 이주를 선호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주를 시작하지 않은 재건축 대상 단지와 암사동 등의 다세대주택 전셋값이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