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공정의 덫'에 걸린 고용유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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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하청근로자가 비정규직의 해방구인가. " 대법원이 지난 7월 파기 환송심을 통해 '현대자동차의 사내 하청근로자가 불법파견 형태로 고용돼 2년 이상 근무한 경우는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을 때,고용노동부의 한 간부는 이렇게 외쳤다. 사내 하청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들이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며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다는 어투였다. 고등법원까지 합법적인 사내 하청근로로 판단한 사건을 대법원에서 뒤집은 배경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법률심인 대법원이 사실관계까지 심리하며 고법 판결을 뒤집은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있은 지 얼마 뒤 '공정한 사회' 신드롬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평등과 분배의 복지사회쯤으로 인식되는 공정사회론이 등장한 뒤 정부의 정책방향은 친시장과 친기업에서 친서민,친복지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갔다. 이 틈을 타 노동단체 등 좌파성향 세력들의 권리욕구는 높아졌고,사내 하청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힘을 더해갔다. 정부의 공권력은 사내 하청근로자들이 현대차 생산공장을 불법점거해도 뒷짐을 지고 수수방관할 정도였다. '공정 사회'가 정부의 정책 아이콘으로 등장하면서 고용 유연성과 관련한 고용부의 정책의지도 덩달아 수그러들었다.
이런 흐름은 내년도 업무계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박재완 고용부 장관은 지난 14일 청와대 보고에서 근로자파견업의 대상을 조정하되 제조업은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독일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선 제조업이 파견대상에 포함돼 기업들이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영하도록 돕고 있다. 제조업 공정에 파견근로자 투입이 허용되면 현대차처럼 사내 하청근로자의 불법파견 시비는 일어나지 않는다. 박 장관은 "선진국의 파견업 제도는 국가마다 차이가 있고 다양성이 있다. 노사와 여야의 인식 차이가 커 파견업 조정에 대한 논의에서 제조업을 제외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제조업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정부가 내놓으면 요란한 포성만 오가고 아무런 효과를 못 얻을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야당과 노동단체들이 반대하는 이슈는 정부의 정책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기간제 사용제한을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박 장관은 비슷한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는 "각계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기간제 제도 개선을 논의해도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비정규직을 늘리는 정책은 논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부 정책이 공정의 덫에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와 반대되는 정책흐름을 밝혀 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기간제근로자 당사자가 합의하면 2년으로 제한된 사용기간을 더 연장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사실상 폐지하는 것으로 지난해에도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샀던 이슈다.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들도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논의대상에서 제외시켰고,고용부도 이 의견을 받아들여 폐기처분된 정책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노사,여야의 입장이 엇갈려 논의의 진전이 되지 않는 이슈를 또다시 들고 나와 그 배경이 아리송하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국가경제라는 큰 그림을 그린 뒤 그에 걸맞은 정책을 일관성 있게 밀어붙일 때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고 박수를 보낼 것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대법원 판결이 있은 지 얼마 뒤 '공정한 사회' 신드롬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평등과 분배의 복지사회쯤으로 인식되는 공정사회론이 등장한 뒤 정부의 정책방향은 친시장과 친기업에서 친서민,친복지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갔다. 이 틈을 타 노동단체 등 좌파성향 세력들의 권리욕구는 높아졌고,사내 하청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힘을 더해갔다. 정부의 공권력은 사내 하청근로자들이 현대차 생산공장을 불법점거해도 뒷짐을 지고 수수방관할 정도였다. '공정 사회'가 정부의 정책 아이콘으로 등장하면서 고용 유연성과 관련한 고용부의 정책의지도 덩달아 수그러들었다.
이런 흐름은 내년도 업무계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박재완 고용부 장관은 지난 14일 청와대 보고에서 근로자파견업의 대상을 조정하되 제조업은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독일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선 제조업이 파견대상에 포함돼 기업들이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영하도록 돕고 있다. 제조업 공정에 파견근로자 투입이 허용되면 현대차처럼 사내 하청근로자의 불법파견 시비는 일어나지 않는다. 박 장관은 "선진국의 파견업 제도는 국가마다 차이가 있고 다양성이 있다. 노사와 여야의 인식 차이가 커 파견업 조정에 대한 논의에서 제조업을 제외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제조업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정부가 내놓으면 요란한 포성만 오가고 아무런 효과를 못 얻을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야당과 노동단체들이 반대하는 이슈는 정부의 정책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기간제 사용제한을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박 장관은 비슷한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는 "각계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기간제 제도 개선을 논의해도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비정규직을 늘리는 정책은 논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부 정책이 공정의 덫에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와 반대되는 정책흐름을 밝혀 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기간제근로자 당사자가 합의하면 2년으로 제한된 사용기간을 더 연장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사실상 폐지하는 것으로 지난해에도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샀던 이슈다.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들도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논의대상에서 제외시켰고,고용부도 이 의견을 받아들여 폐기처분된 정책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노사,여야의 입장이 엇갈려 논의의 진전이 되지 않는 이슈를 또다시 들고 나와 그 배경이 아리송하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국가경제라는 큰 그림을 그린 뒤 그에 걸맞은 정책을 일관성 있게 밀어붙일 때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고 박수를 보낼 것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