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연평부대가 예고했던 대로 지난번 중단됐던 잔여 사격훈련을 마쳤다. 사격 시간은 예상보다 짧은 94분이었다. K-9 자주포와 견인포,85㎜ 박격포 등이 동원됐고 포탄도 1500여발이었다.

당초 이날 오전 11시께 훈련이 실시될 예정이었지만 서해상에 안개가 심해 훈련시간이 수차례 조정돼 한때 연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군은 "날씨가 관건이지만 반드시 쏜다. 당연히 해야 할 훈련을 이제야 하는 것일 뿐"이라고 연기론을 일축했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군은 물론 북한 전방에서도 전시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며 "지금은 한반도 전체가 비상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군의 대응 도발은 없었다.

◆연평도 남서쪽으로 1500여발 사격

군은 오전 11시쯤 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연평도 인근 해무로 인한 기상 악화로 관측 상태가 좋지 않아 오전 11시와 오후 1시10분 등 두 번 미뤄졌다가 결국 2시30분이 돼서 훈련이 시작됐다. 앞서 오전 9시 연평도에 머물고 있는 주민과 취재기자,관공서 직원,소방 지원 인력,복구공사 업체 직원 등 280여명을 방공호로 긴급 대피시켰다. 오후 2시를 넘기면서 연평도 주변 해상에 깔린 해무가 조금씩 걷히자 2시30분에 K-9 자주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어 60㎜ · 81㎜ 박격포,105㎜ 견인포,벌컨포 등의 순으로 사격이 이뤄졌다. 사격 구역은 연평도 남서쪽 가로 40㎞,세로 20㎞ 해상이었다.

이 구역은 지난달 23일 북한이 포격 도발을 해오기 전 연평부대가 통상적으로 사격훈련을 해온 곳이다. 북방한계선에서 최소한 10㎞ 이상 떨어진 우리 영해에 속한 지점이다.

군은 K-9 자주포 150~200여발을 포함,총 1500발가량을 일제타격(TOT) 방식으로 발사했다. 군 관계자는 "지난달 23일 연평부대에서 K-9 고폭탄 등 11종 3657발을 발사하려다가 북한군 포격으로 중단된 잔여량을 발사했다"며 "1시간30분 정도 집중적으로 일제타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연평부대 편제 화기가 대부분 사격훈련에 동원됐다"며 "지난달 23일에 중단된 훈련이 다시 시작됐다는 데 의미가 있으며 당시 계획대로 쏘지 못해 남은 포탄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연평부대는 지난달 23일 K-9 고폭탄 등 11종,3657발을 사격하는 훈련을 오전 10시15분에 시작했다가 오후 2시34분 북한군 포격 도발로 중단됐다.

◆군 대비 태세 유지

한민구 합참의장은 이날 연평도 사격훈련이 끝난 뒤 각 작전사령관 및 합참 관계관 등에게 북한이 언제든지 도발할 수 있으므로 경계 태세를 이완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하달했다.

합참에 따르면 한 의장은 지휘통제실에서 "서해 연평부대가 계획된 통상적이고 정당한 훈련을 잘 마쳤다"며 "이번 사격훈련 때 우발 상황에 대비한 계획 수립과 준비,실사 과정을 통해 합참과 우리 군의 합동성 발휘 및 위기 조치 능력 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으로 격상됐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언제든지 도발할 수 있다"며 "지금의 군사 대비 태세와 능력을 바탕으로 언제,어느 곳에서 적이 도발하더라도 이를 응징할 수 있도록 각 작전사는 우발상황에 대한 대응 태세를 확인하고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한 의장은 "이번에 북한의 추가 도발이 없었다고 경계 태세를 이완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각 작전사는 책임 지역에서 적의 도발이 있을 수 있음을 유념하면서 연말연시 경계작전 등 군사 대비 태세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국방부 청사 지하의 군사지휘본부를 방문,"북한 도발 시 가능한 모든 대비책을 강구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연평도 해상 사격훈련에는 주한미군 20여명(통신요원 등)도 참가했다. 군 당국은 "주한미군과의 공조는 다른 곳에서 있었으나 연평도 훈련에는 처음"이라며 한 · 미 양국의 협력체제가 견고함을 내비쳤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