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전기요금]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요금에 전력 소비 '펑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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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짜리 전기 94원에 파는 셈
전기요금, 일본ㆍ영국의 절반 … 농사용은 원가의 37% 불과
산업용 수요 매달 10% 증가 … 난방기기 사용량, 전체 24%
전기요금, 일본ㆍ영국의 절반 … 농사용은 원가의 37% 불과
산업용 수요 매달 10% 증가 … 난방기기 사용량, 전체 24%
#한국전력이 분기 기준으로 흑자를 낸 지난 3분기 말.전력 사용량이 많은 모기업 임원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공기업인 한전이 폭리를 취하는 게 말이 되느냐. 전기요금을 깎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전은 지난 3분기 말까지 누적 기준으로는 511억원의 적자(당기순손실)를 냈다. 2008년에는 2조9525억원,지난해에는 777억원 적자였다.
#전력 사용량이 하루 만에 사상 최대치를 두 번이나 경신한 지난 15일 전력거래소는 올해 겨울철 전력 사용량이 최대 7250만㎾에 달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15일 오후 6시에 기록한 사상 최대치(7131만㎾)보다 더 늘어난 규모다. 보통 12월보다 1,2월이 더 춥다는 점에서 겨울철 전력 수급 비상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겨울철에 전력 대란이 우려되는 표면적 이유는 경기 회복에 따른 산업용 수요 회복과 전열기 등 전기 난방기기의 보급 확대다. 전체 전력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력은 올 들어 거의 매달 10% 이상 증가했고 전기 난방기기는 전체 전력 사용량의 24%에 달한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터무니없이 싼 전기요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국제 가격보다 싼 한국 전기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기요금과 관련해 시장에 잘못된 가격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격이 높아야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시장 원리인데 정부가 전기요금을 장기간 낮은 수준으로 묶어두면서 소비자들이 전기를 펑펑 쓰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등유는 98%,도시가스는 43%나 가격이 올랐지만 전기요금은 12% 상승에 그쳤다. 이는 소비 패턴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이 기간 등유 소비가 67% 떨어진 반면 전기 소비는 42% 증가한 것이다.
전기위원회가 지난해 기준으로 각국의 전기요금을 비교한 결과 한국의 전기요금을 ㎾h당 100원으로 가정했을 때 일본은 242원,영국은 221원에 달했다. 한국의 전기요금이 영국이나 일본의 2분의 1도 안 된다. 미국(138원)과 프랑스(170원)도 한국보다 높다.
또 국내 전기요금은 생산원가의 평균 93.7%에 불과하다. 즉 100원짜리 전기를 94원도 안 받고 파는 셈이다. 특히 농사용은 36.5%,심야 전력은 73.9%에 그친다. 전체 전력 사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도 96.5%로 원가보다 낮다.
◆피크 때 더 낮은 전기요금
겨울철 전기요금이 원가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문제다. 정부는 1988년부터 계절별로 전기요금에 차등을 두는 요금제를 도입했다. 여름(7~8월) 봄(3~6월) 가을(9~10월) 겨울(11~2월)로 구분해 전기를 더 많이 쓰는 계절에 상대적으로 높은 요금을 매기는 식이다.
여름철 전기요금이 ㎾h당 101원으로 가장 높고 겨울(91원),봄 · 가을(77원) 순이다. 하지만 원가 회수율로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봄 · 가을이 107%로 가장 높고 여름이 98%,겨울이 91% 순이다. 봄 · 가을에는 전기 생산단가가 낮은 원자력발전소나 석탄발전소 위주로 가동해도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력 사용이 일시적으로 크게 늘어나는 여름과 겨울에는 발전 단가가 훨씬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까지 돌려야 해 원가 대비 회수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최근 겨울철 전력 사용량이 여름철을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지식경제부는 원가 회수율이 떨어지는 겨울철 전기요금을 더 올릴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주택용 전기요금에 적용되는 누진제도 논란이다. 누진제는 사용량에 따라 6단계로 요율을 차등 적용하는 제도다. 월 사용량이 500㎾h를 넘는 최고 등급은 요율이 656원으로 월 100㎾h 미만을 사용하는 최저등급(56원 가량)보다 11배 이상 높다. 고소득층의 전기 소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지만 역으로 저소득층의 전기 사용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누진제를 3단계로 단순화하고 요율 차이도 세 배 이내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올리고 싶어도 물가 때문에…
정부도 내심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실제 행동은 더디다. 지경부는 지난 8월 전기 소비를 줄이고 발전소 건설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이 10%가량 인상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인상폭은 평균 3.5%에 그쳤다. 나머지는 한전의 자구 노력으로 보충하겠다고 발표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한전의 판매관리비가 8917억원으로 전년 동기(8380억원)보다 537억원 늘어난 점을 감안할 때 일견 맞는 얘기이지만 자구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필요한 인상분보다 적게 올린 데 대해 정부 관계자는 "물가에 부담을 준다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석탄 등 전기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연료 가격이 오르면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동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그러나 인상 폭에 제한을 두는 등 적극적인 인상은 꺼리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신중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고 한전의 적자를 메워주는 것도 결국 국민 세금을 쓰는 일"이라며 "전기가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값싼 에너지가 아니라 돈을 내고 써야 하는 값비싼 에너지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에 대해선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직접 보조가 아니라 에너지 쿠폰이나 현금 보조금을 주는 간접 지원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