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화폐 단위는 대부분 금이나 은 등 귀금속의 무게를 재던 척도에서 유래했다. 영국의 파운드화와 발음과 철자가 똑같은 '파운드'가 여전히 무게 단위로 사용되고 있고,독일의 옛 화폐 단위인 '마르크'도 금과 은의 무게를 잴 때 사용되던 2분의 1 파운드라는 뜻의 무게 단위 '마르크'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의 옛 화폐 단위 '리브르'와 이탈리아의 '리라' 역시 1파운드의 무게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특히 전근대 사회 대부분의 문명권에서는 은을 통화의 기반으로 삼았다.

하지만 곧이어 금이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은과 금의 경쟁에서 금이 승리한 것은 19세기였다. 1859년 미국 네바다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면서 은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 데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이 나폴레옹 전쟁 이후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던 점이 큰 역할을 했다. 국제경제를 선도하던 파운드화가 금본위제 정착에 힘을 실은 것이다.

결국 1871년 은본위제를 고수하던 독일이 금본위제로 이행하면서 금대세론은 굳어졌고 프랑스,벨기에,스위스,이탈리아 등 '프랑권 국가'들이 1870년대 금본위제로 이행하게 된다. 미국도 1900년 금본위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금본위제는 1차 세계대전으로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전시에 시민들이 금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금으로 바꿨고 각국 정부가 서둘러 금태환을 중지하면서 국제통화제도가 마비된 것이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에 금본위제 포기를 선언했고 1931년에는 금태환을 전면 정지했다. 미국도 1933년 금본위제를 폐지했다.

2차대전 후 세계는 새로운 국제통화제도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44개국이 모여 세계 경제질서를 결정한다. 여기에서 등장한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을 중심으로 한 브레턴우즈 체제로 금 1온스는 35달러로 고정됐다.

그러던 금본위제가 글로벌 경제위기와 화폐전쟁을 거치면서 일각에서 도입론이 제기되고 있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최근 "금을 향후 통화가치에 대한 시장기대를 가늠할 기준으로 삼자"며 '새로운 금본위제' 부활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선 비판적 시선이 많다. 프레드 버그스텐 미 피터슨경제연구소 소장은 "시세 변동폭이 매우 큰 금을 기준으로 쓴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도 "금본위제 논의는 먼 옛날 얘기일 뿐"이라고 비판했고,에델 툴리 UBS애널리스트는 "오늘날 금 공급은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하는 데도 크게 부족한 수준인 만큼 금본위제 복귀는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