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8월 내놓은 세제개편안의 핵심은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실효성이 낮은 비과세 · 감면 등을 과감히 철폐해 2015년까지 1조9000억원의 세수 증대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100여개의 세제개편안 가운데 상당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안 대거 제동

국회 기획재정위가 7일 통과시킨 세제개편안에는 세금 감면을 연장하거나 추가 세부담을 막는 내용이 많다. 다중(多衆)에게 적용되는 소득세율 문제에서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공방을 벌였으나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힌 세목에서는 여야 모두 관대했다.

연수익 5억원 이상인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과 학원 예식장 등이 소득세를 신고할 때 세무사나 회계사로부터 정확성을 검증받도록 한 세무검증제도는 아예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6000만원 이상의 고가 미술품을 거래할 때 양도세(20%)를 물리기로 한 정부안도 또다시 2년 유예됐다.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는 유예됐고,정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는 공제율이 7%에서 1%로 축소돼 유명무실해졌다.


◆비과세 · 감면은 대거 연장

세수 확대안은 많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비과세 · 감면은 상당수가 연장되거나 오히려 강화됐다. 대부분 이익단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내년 4월30일 일몰 예정이었던 택시LPG 개별소비세 면제는 2012년 말까지로 연장됐다. 고용유지중소기업 및 근로자에 대한 세제지원 일몰 시기도 1년 연기됐다. 창투조합 등 출자금 소득공제 일몰은 2012년 말로 2년이나 연장됐다.

자동차운전학원 교육용역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 시기는 2012년 7월1일로 1년간 유예됐다. 국민주택 규모(85㎡) 이하의 노인복지주택에 공급하는 용역에 대한 부가세 면제도 신설됐다.

비인기종목 운동팀 창단이나 운영기업에 대한 법인세 세액공제율은 7%에서 10%로 상향됐다. 폐식용유로 제조된 바이오디젤에 한해 교통 · 에너지 · 환경세 면제안은 모든 바이오디젤에 대한 면제로 확대됐다. 국내 복귀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소득 · 법인세 감면) 기간도 정부안보다 2년 확대된 5년간 100%로 결정됐다.

◆재정건전성 회복 차질 우려

야당인 민주당이 마지막까지 공을 들인 것은 소득세 최고세율 감세 철회였다. 2012년부터 예정된 세율 2%포인트 인하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막판까지 이견을 보인 이 사안에 대해 여야는 결국 내년에 논의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재정부는 한나라당이 제시한'1억원 초과 구간 신설안'이 도입되면 기존 감세안에 비해 1100억원 정도 소득세가 더 걷힐 것으로 예상했다. 세무검증제 도입 무산에 따른 세수 감소액(연간 7000억원 예상)에 비해 훨씬 적은 금액이다. 당초 정부가 추산한 올해 세제개편안에 따른 세수 증가분도 1조9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상당 부분 후퇴함에 따라 2013~2014년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