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국제기구에 가입하거나 협상하는 과정에서 겪은 숱한 시행착오와 일화가 2일 발간된 '한국 경제 60년사'에 소개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4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을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 범주에 넣기 위해 노력했던 일화가 눈길을 끈다. 당시 APEC은 회원국 간 무역 및 투자를 완전 자유화하기로 하고 그 시기를 선진국은 2010년,개도국은 2020년으로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신흥공업국으로 분류,자유화 시기를 2015년으로 하자는 의견을 제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정상회의 전날 밤 한국 등의 자유화 시기를 2015년으로 앞당긴다는 내용이 회의 자료에 포함됐다는 보고를 받고 새벽 1시에 수행하던 장관들을 모두 깨워 대책회의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다음 날 아침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을 만나 설득 작업을 벌인 끝에 결국 2015년 자유화 방안을 회의 안건에서 제외시켰다. '한국 경제 60년사'는 "한국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정상외교를 한 적은 없었을 것"이라며 "아직 한국이 선진국에 비해 미진한 분야가 많은 것을 보면 당시 APEC 회의에서 내린 결정이 맞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1950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할 뻔한 일도 있었다. GATT는 1949년 9월 한국이 가입 자격이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1950년 12월 이사회에서 한국을 신규 체약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은 국내 비준절차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입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았고 GATT는 서명기한을 연장하면서까지 가입을 독촉했으나 한국의 가입은 무산됐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 시장 개방 협상에 관여했던 관료들이 탈진했던 일도 소개됐다. 몇 년간 휴일도 거의 없이 일하느라 피로가 누적된 협상 담당자들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탈진해 응급조치를 받았다.

이 밖에 포항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모두 영일만에 몸을 던지자는 '우향우 정신'과 대우그룹의 실패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실렸다. 대우는 과거 한국의 핵심 성공 요인이 정부 지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 경험을 살려 현지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세계 경영'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