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주민들의 생활터전으로 자리잡은 '시장'을 죽이기 위해 작년 11월 말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러나 시장기능을 대신해야 할 배급체계에 구멍이 나면서 물품 부족과 그에 따른 인플레 등 심각한 후유증만 남겼다는 평가다.

◆'시장 죽이지 못했다'

북한의 화폐개혁 목적은 시장을 억누르는 것이었다. 시장경제 요소를 일부 받아들인 2002년의 '7 · 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시장에서 돈을 모은 중소 상공인들이 반체제 세력으로 변질될 위험을 차단하고,경제부문에서 국가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3대 세습을 앞두고 잠재적 장애물인 '시장세력'을 꺾으려는 포석이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는 실패로 끝났다. 시장거래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고,당국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만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시장을 완전히 통제하려면 배급기능이 잘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이는 기본적으로 공급물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당국의 허가를 받은 종합시장만 300~350개에 달하고 자생적 장터인 '장마당'과 옮겨 다니며 여는 '메뚜기시장' 같은 비인가 시장도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폐개혁의 실패를 자인한 북한은 지난 4월 '인민경제계획법'을 개정,국가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끌고 갈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반 시장적' 조치들이 작동할지는 회의적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시 · 도당 간부들도 시장에서 생필품을 구하는 경우가 많고 주민들이 시장에서 매대를 얻거나 미허가 거래를 무마하기 위해 관료들에게 뇌물을 건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주민경제는 전후 '최악'

최근 탈북자들의 증언과 각종 정보를 종합해보면 화폐개혁 이후 북한의 주민경제는 완전히 몰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3대 세습과 관련해 '정치적 동원'이 증가하고 있고,시장활동에 대한 간섭이 늘어나면서 주민경제는 전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천안함 사태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남북교역 감소 등이 치명타를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3분의 1을 차지하는 남북 교역이 금강산관광 중단 여파 등으로 연간 50억달러에서 20억달러로 급감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주로 신용(외상)에 의존해온 중국과의 교역도 적자 규모가 4억달러에서 최근 12억달러가 넘어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물자를 공급받는 데도 한계에 봉착했다"고 덧붙였다. 김진무 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중국이 겉으로는 북한을 도와주는 것 같지만 대부분 정치적 액션이며 실질적인 경제지원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쌀 · 석유 지원도 국제시세를 기준으로 교역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