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낙타의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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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를 끌고 사막을 건너던 나그네가 텐트를 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떠 보니 밖에 있던 낙타가 추위를 피해 텐트 안으로 코를 들이민 것이었다. 코쯤이야 괜찮겠지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느낌이 이상해 일어나 보니 이번엔 낙타의 머리가 텐트 안에 들어와 있었다. 오죽 추우면 그럴까 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얼마 지난 다음 무거운 것에 짓눌린 듯해 깨어 보니 낙타의 큰 몸이 통째로 텐트 안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나그네는 결국 텐트 밖으로 밀려나 추위에 떨며 밤을 새워야 했단다. 낙타의 코를 조심하라는 중동의 우화다. 처음에 사소한 듯해서 방심했다가는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교훈이다. 홍만종의 '순오지'에 나오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같은 속담도 처음부터 야무지게 대비해야 탈이 없다는 것을 일러준다.
중국에는 '양 잃고 우리 고치기'라는 말이 있다. '전국책'에 기록된 '망양보뢰(亡羊補牢)'의 고사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대신 장신(莊辛)은 주색에 빠진 양왕에게 국정에 전념할 것을 간언했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자 조나라로 떠났다. 얼마 후 진나라의 침공을 받아 피신한 양왕은 장신을 불러 방책을 물었다. 장신은 "토끼를 발견한 후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양을 잃고 난 뒤라도 우리를 잘 손질하면 늦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어쩌다 실수를 했어도 즉시 고치면 괜찮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번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의 생명과 영토를 지키는 국방에선 더 그렇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우리 군이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천안함 폭침사건이 흐지부지돼 가고 있는 마당에 민간거주지역이 무차별 포격당했는데도 자주포 80여발을 응사하는 데 그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양을 잃고도 우리를 고치지 못한 꼴이란 비판이다.
낙타가 텐트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걸 막는 방법은 한 가지다. 코를 들이밀었을 때 일침을 가해 밀어내는 것이다. 정부가 서해5도 전력을 증강하고 교전수칙을 보완한다지만 실전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과잉대응이야 피해야겠으나 도발을 하면 손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겠다는 정신자세부터 가다듬을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얼마 지난 다음 무거운 것에 짓눌린 듯해 깨어 보니 낙타의 큰 몸이 통째로 텐트 안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나그네는 결국 텐트 밖으로 밀려나 추위에 떨며 밤을 새워야 했단다. 낙타의 코를 조심하라는 중동의 우화다. 처음에 사소한 듯해서 방심했다가는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교훈이다. 홍만종의 '순오지'에 나오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같은 속담도 처음부터 야무지게 대비해야 탈이 없다는 것을 일러준다.
중국에는 '양 잃고 우리 고치기'라는 말이 있다. '전국책'에 기록된 '망양보뢰(亡羊補牢)'의 고사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대신 장신(莊辛)은 주색에 빠진 양왕에게 국정에 전념할 것을 간언했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자 조나라로 떠났다. 얼마 후 진나라의 침공을 받아 피신한 양왕은 장신을 불러 방책을 물었다. 장신은 "토끼를 발견한 후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양을 잃고 난 뒤라도 우리를 잘 손질하면 늦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어쩌다 실수를 했어도 즉시 고치면 괜찮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번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의 생명과 영토를 지키는 국방에선 더 그렇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우리 군이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천안함 폭침사건이 흐지부지돼 가고 있는 마당에 민간거주지역이 무차별 포격당했는데도 자주포 80여발을 응사하는 데 그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양을 잃고도 우리를 고치지 못한 꼴이란 비판이다.
낙타가 텐트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걸 막는 방법은 한 가지다. 코를 들이밀었을 때 일침을 가해 밀어내는 것이다. 정부가 서해5도 전력을 증강하고 교전수칙을 보완한다지만 실전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과잉대응이야 피해야겠으나 도발을 하면 손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겠다는 정신자세부터 가다듬을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