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발이 한계를 넘고 있다. 천안함 폭침사건이 지난 3월 말 발생했는데,그 도발을 인정하기는커녕 검열단을 보낸다고 하더니 며칠 전 방북했던 미국 핵 전문가에게는 핵연료 제조공장과 1000여개가 넘는 원심분리기를 보여주면서 노골적인 '고농축우라늄' 협박을 했다. 급기야 엊그제 우리 영토에 대해 무차별 포사격을 가해왔다.

하지만 곰곰이 되씹어보면 북한의 이런 전방위적 도발행위는 어느 정도 예감된 측면이 있다. 예컨대 기존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이 지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우리민족끼리' 정신을 강조해오던 패턴이었다면 천안함 폭침사건을 전후해서는 "총대로 조국을 통일하자"를 새로운 구호로 내세우면서 총대통일론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와 후계체제를 공식화하려는 북한의 내부적 정세판단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을 공산이 크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연평도 침공사건은 단순히 일회적이고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북한의 계속적이고 예상을 뛰어넘는 무력도발의 서곡일지 모른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침공사건은 몇 가지 원론적인 과제를 제기한다. 우선 우리의 대북 군사 억지력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 문제다. 사실 지난 천안함 사건과 이번 연평도 침공사건을 통해 북한은 나름대로 정밀타격 능력과 군사적 기술력을 시위하고 있다. 만행을 극구 부인하고 우리 측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상투적인 수법을 쓰고 있지만,천안함 사건과 이번 연평도 포격사건은 우리의 대북 군사 억지력이 과연 어느 정도 되는지에 대한 불안감을 갖도록 한 것이 사실이다.

선제공격의 가측력이 어려운 현대전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의 군사적 기술력은 국민들의 예상보다 훨씬 높았던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우리 군의 2차 대응력 내지 응징력도 무기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와 북한 도발에 대한 단호한 응징이란 차원의 복잡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명박 정부는 대북 군사 억지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두 차례의 군사 침공을 당하면서,특히 이번 연평도 침공행위에 대한 대북 군사적 옵션을 실제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황해도 옹진반도 등에 대거 포진해 있는 북한의 지대함 미사일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군사적 충돌로 인한 충격과 피해가 월등히 클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이 지혜일 수 있지만,이것이 만약 남북한 힘의 대결에서 패배의식이 작용한 결과로 인식된다면 낭패가 아닐수 없다.

둘째,10여개로 추정되는 북한 핵무기는 실제적인 존재 여부를 검증하지는 못했지만 북한의 도발에 따른 남북한 군사적 충돌을 가상할 때 이미 그것은 충분히 가용되고 있는 현실적 위협이고 파괴력이라는 점이다. 이미 우리 국민들의 머릿속에는 북한 핵으로부터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북한 핵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져든 작년부터 외국의 전문가들은 소형 정밀타격 핵병기의 개발과 사용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최근 방한했던 이매뉴얼 월러스타인 미국 예일대 교수도 이런 시나리오에 입각한 동북아 질서의 변화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는 북한의 실제적 군사 도발과 핵위협에 대한 심각한 논의는 없다. 오히려 명분에 집착하고 환상에 사로잡힌 논의가 적지 않다. 정치인은 많은데 정치가가 없고,전문가는 즐비한데 정작 전략가를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핵을 노골적인 위협수단으로 쓸 수 있는 북한 정권에 대한 실제적인 대비책을 이명박 정부는 세워야 한다.

이조원 < 중앙대 국제정치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