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쪽은 미국…車관세 연장 요구 수용하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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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 재협상' 전문가 진단
車분야 양보 최소화하고 금융·농산물서 이익 챙겨야
氣싸움에서 밀리지 말고 '협정문 수정불가' 원칙 고수를
車분야 양보 최소화하고 금융·농산물서 이익 챙겨야
氣싸움에서 밀리지 말고 '협정문 수정불가' 원칙 고수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정부는 "극히 제한된 분야에서 주고받기식 협상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에선 '결국 일방적 양보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미국의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지,우리가 반대 급부로 얻어낼 것은 무엇인지,협상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에 대해 FTA 전문가 5명의 의견을 들어봤다.
◆차(車)분야 양보 최소화해야
조만간 미국 워싱턴에서 재개될 재협상의 최대 쟁점은 자동차 관세철폐 시한을 연장하느냐,마느냐다. 2007년 6월 타결된 기존 협정문에 따르면 미국은 3000㏄ 미만 자동차에 대해선 협정 발효 즉시,3000㏄ 이상은 협정 발효 3년 뒤 2.5%의 관세를 없애야 한다. 미국은 최근'서울 협상'에서 이 시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우리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향후 재협상에서도 수용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관세 철폐는 한 · 미 FTA에서 우리가 얻어낸 최대 성과"라며 "이걸 양보하면 다른 부문에서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조정실장도 "상식을 넘어선 요구"라고 잘라 말했다. 미국의 요구는 FTA의 핵심인 '관세 조기 철폐'와 정면 배치된다는 것이다.
서 실장은 다만 "미국의 관세환급 제한 요구는 한 · 유럽연합(EU) FTA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일정 부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관세 환급은 한국 자동차 업체가 미국에 완성차를 수출할 때 수입 부품에 대해 낸 관세 8%를 우리 정부로부터 돌려받는 것을 말한다. 한 · EU FTA에선 최대 5%로 제한할 수 있게 돼 있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 요구는 물론 자동차 관세철폐 시한 연장이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조항 신설 요구 모두 일종의 블러핑(협상용 속임수)"이라며 "미국의 페이스에 말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밖에 자동차 환경기준(연비규제)과 안전기준(자가인증)에 대해선 대체로 수용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금융 · 농산물서 반대급부 챙겨야
자동차 분야에서 우리가 일정 부분 양보할 경우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받아 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 분야를 꼽았다.
최 교수는 "미국이 자동차에서 우리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몰락한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라며 "우리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 금융안전망 확충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금융위기가 재발하면 외환거래를 일시 중단시킬 수 있도록 금융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을 완화해 달라고 미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협정문에도 금융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발동 기간이 1년으로 제한돼 있고 통상의 투자이익을 보장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실제 발동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농산물 시장 보호를 대안으로 제시한 전문가도 많다. 서 실장은 "미국의 자동차 관세철폐 시한 연장 요구를 수용한다면 우리도 취약 산업인 농산물 관세철폐 시한을 연장해달라고 맞불을 놔야 한다"며 "경제적 효과만 놓고 보면 실익은 크지 않아도 국민 정서 등 경제 외적인 측면에선 상당한 성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곽 수석연구원은 "우리 농산물 시장 보호와 함께 미국 정부 조달 시장을 추가 개방해 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만 행사할 수 있는 스냅백(한국이 FTA 협정을 위반할 경우 철폐했던 관세를 원상 회복할 수 있는 권리) 철회를 요청하면 자동차 분야에서 이익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녀선 안 돼
재협상 전략에 대해선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녀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 연구위원은 "내년 7월 한 · EU FTA가 발효되면 미국 기업 입장에선 한국 시장을 유럽 기업들에 내주게 된다"며 "한 · 미 FTA가 안 되면 급해지는 건 한국보다 미국"이라고 말했다. 서 실장도 "한국이 중국과 FTA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 · 미 FTA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며 "한 · 미 FTA가 파국으로 치달아선 안 되겠지만 협상 테이블에선 '미국이 무리하게 나오면 협상을 깰 수도 있다'는 벼랑 끝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가급적 협정문 수정은 절대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나치게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최 교수는 "미국에 자동차를 양보하는 대신 한국이 취약한 금융분야에서 양보를 얻는 식으로 협상을 조기 타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용석/이상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