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의 현실은 어렵죠.뮤지컬이 뜨면서 더 왜소해진 면이 있어요. 그래서 국립극단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을 맡은 연극연출가 손진책씨(63 · 사진)는 10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국립극단은 지난 6월 국립극장 전속 단체에서 재단법인으로 독립했으나 외국인 감독 영입 등 여러 문제로 인해 새 감독 선임을 미뤄왔다. 수 차례 제의를 거절했던 손 감독은 이날 "부담감이 컸지만 일단 결심한 이상 많은 일을 벌일 것"이라며 "임기 3년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24년 동안 극단 미추를 이끌어온 그는 1회성 연극 작품을 만들고 버리기를 반복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좋은 작품을 레퍼토리(준비된 목록)로 구성해 1~3년 동안 반복 공연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과 해외까지 찾아가는 공연을 늘릴 겁니다. 국립극단 단원 여부와 상관없이 오디션을 거친 일정 수준 이상의 배우들을 재교육하는 인재 양성소 역할도 해야죠.창작극을 개발하기 위해 '희곡 뱅크'를 만들고 좋은 작품은 재야 극단에 연결시켜 줄 수도 있을 거예요. 극작가와 연출가 발굴을 위한 워크숍도 활성화하겠습니다. 요즘 젊은 연출가들은 소극장에서는 잘 하는데 중 · 대극장에선 어떻해 해야 할지를 몰라요. 경험이 없으니까….연극 제작팀에 끊임없이 이론적 · 학문적 자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학술팀도 신설합니다. "

단원 전속 고용제를 폐지하고 작품별로 배우를 뽑아 계약하는 제도도 도입한다. "월급을 주는 전속 배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젠 세계가 변했어요. 또 국립극단이 여러 배우들에게 열려 있어야죠.실력 면에서도 머물러 있는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

그는 유연성과 새로운 도전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있으면 절대로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실험적인 동시대 연극이나 외국 연출가가 만드는 한국 창작극 등 신선한 작품들을 많이 내놓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관객 개발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와 관련 정책을 조율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요즘 청소년들은 입시 때문에 학예회도 제대로 못하는데 연극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풍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합니다. (한국 연극의 미래를 위해) 많은 연극인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국립극단을 중심축으로 만들겠습니다. "

국립극단은 내년 1월 주 공연장으로 사용할 명동예술극장에서 배삼식씨가 각색하고 한태숙씨가 연출하는 한국판 '오이디푸스'를 첫 공연작으로 선보인다.

손씨가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는 동안 극단 미추는 부인인 배우 김성녀씨가 대표를 맡아 끌어갈 예정이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