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산리 2구 69의 888.전남 무안 일로읍 인의산(152.5m) 자락 한 마을을 찾아가는 중이다. '무안(務安)을 일삼'는 이곳에는 오래 전 '천사촌'이라 부르던 각설이 마을이 있었다. "천사마을에는 서른여덟의 천사들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는 부부가 네쌍에,그만그만한 아이들도 열여덟명이나 있다.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가 된 아이들은 근처에 있는 일로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일구어 먹을 땅 한 뙈기 없이,여기저기로 떠돌며 '동정질'로 목줄을 적신다. "(《숨어사는 외톨박이1》,뿌리깊은나무,1977년)

◆각설이는 사라지고 장타령만 남아

물론 그곳에 가야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찾아가느냐고? 우리는 지금 격양가를 부르며 태평성대에 취해 있다. 우리의 도취에는 아무 뉘우침이 없어도 좋은가. 나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행위가 사랑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물질의 풍요를 구가하는 대신 사랑을 모르는 우둔한 존재가 돼 버렸다. 잊혀진 결핍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천사촌으로 이끈 것이다.

예상대로 천사촌은 텅 비어 있었다. 달랑 집 한 채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근래 세운 '품바 발상지'라는 빗돌이 겨우 공허감을 채워줄 뿐이었다. 처음 천사촌에 터를 잡은 사람은 김시라(1945~2001)의 일인극 '품바'의 주인공이기도 한 각설이 대장 천장근(김작은이)이었다.

한때 100여명이 넘는 '천사'들이 살았던 마을은 1962년 주민등록법이 제정되고 구걸마저 금지되면서 시름시름 폐촌이 돼 버렸다. 그러나 이들의 삶을 극화한 '품바'는 1981년 김시라가 일로 공회당에서 처음 공연한 이래 현재까지 공연 횟수 5000회가 넘도록 장기 흥행 중이다. 작가마저 세상을 뜬 지 오래지만 '품바'에 담긴 풍자정신만은 팔팔하게 살아서 이승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돌을 던지며 놀리는 아이들에게 '품바' 속 걸인은 이렇게 일갈한다. "이놈아! 인간이란 누구에게나 서로 얻어묵으며 사는 법이여.거렁뱅이들이 있응께 너희들이 우쭐되고 모자란 놈들이 있응께 너희들이 웃을 여유라도 있어야.이것만큼은 내가 너희들에게 적선을 허는 거이다. 이놈들아!" '깨우칠 각'에 '말씀 설',각설(覺說)이는 그렇게 말로써 우둔하고 버릇 없는 세상을 깨우치는 사람이다.

◆회산백련지와 '품바' 작가 김시라 생가

복용리 회산백련지로 향한다. 일제강점기에 저수지로 축조된 회산백련지는 1955년 정수동이란 주민이 백련 12주를 심은 것이 계기가 돼 지금은 10만평의 연꽃방죽이 됐다. 방죽을 가득 메운 연잎들을 바라보자 최영철의 시 '어머니 연잎'이 떠오른다.

'못 가득 퍼져간 연잎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그것이 못 가득 꽃을 피우려는/ 연잎의 욕심인 줄 알았습니다/(중략)/ 아직 덜 자라 위태위태해 보이는 올챙이 물방개 같은 것들/ 가만가만 덮어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위로 밖으로 비집고 나오려고 서툰 대가리 내미는 것들/ 아래로 안으로 꾹꾹 눌러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

우둔한 세상을 말로써 깨운다는 점에서 시인 역시 각설이의 한 부류다. 가까운 용산리 농장마을에는 2001년에 타계한 김시라의 생가가 있다. 원래는 마을의 생김새가 지네 머리 모양 같다 하여 공수동이라 했으나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경영하던 농장 이름을 따 농장마을이 됐다. 대숲에 둘러싸인 생가로 들어가자 홀로 집을 지키던 김시라의 형수 정천대자(71) 여사가 반갑게 객을 맞는다. 서울이 고향인 정씨는 25세에 이 마을로 시집와 정치가를 꿈꾸던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엔 생가마저 경매 처분돼 남에게 넘어가 버렸다.

길을 나서려는데 어느 틈에 준비했는지 삶은 계란 여섯 개를 내민다. 뜨끈뜨끈한 정을 마다할 수 없어 한 개만 받았다. 홀로 사는 늙은 고모를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조카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무안읍으로 가는 길에 몽탄면 사창리,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옥만호씨가 세운 호담항공우주전시관에 들른다. 야외전시장에선 거위가 된 11대의 전투기들이 '거위의 꿈'을 열창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양파 냄새 윙윙거리는 해제반도의 S라인

아침 일찍 무안읍을 나서 람사르습지,갯벌도립공원인 해제면 유월리 갯벌센터로 떠난다. 해제반도로 들어서자 도로 양쪽에 바다가 있어 마치 섬을 지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무안은 220km에 달하는 리아스식 해안이 이어지는 곳이다. 갯벌 초입에 이르자 멀리 함평 쪽에서 아침 해가 떠오른다. 눈앞에 칠면초 등 염생식물과 알락꼬리마도요 등 조류와 어류 · 조개류 등 다양한 해양생물이 모여 사는 광활한 갯벌공동주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칠면초 군락을 바라보면서 관찰데크 중간에 이르자 광주에서 새벽같이 차를 달려 왔다는 중년의 형제가 망둥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유월리에선 어부들의 밭인 바다보다 양배추들이 푸릇푸릇한 황토 밭두렁들이 진짜 바다 같다. 들 한쪽에선 아주머니들이 부지런히 양파 모종을 옮겨 심고 있다. 겨울이 따뜻해 양파 생육에 알맞은 무안은 국내 최대의 양파 산지다.

물암리 해변에서 설게잡이 그물통발을 만났다. 민물 가재와 비슷하게 생긴 설게는 숨쉴 때 '뻥' 소리를 낸다고 해서 '뻥설게'라고도 부른다. 설게장도 꽃게장 못지않은 밥도둑이다. 백사장을 유유자적 걷다 보니 어느덧 에 닿는다. 섬과 산으로 둘러싸여 호수처럼 물결이 잠잠한 이곳은 윈드서핑의 적지로 꼽힌다. 한여름의 북새통에서 진이 빠졌는지 홀통유원지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조금나루유원지를 지나 다시 무안읍으로 돌아와 향교가 있는 교촌리로 접어든다. 이곳은 강태홍류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 강태홍(1894~1968)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산조는 접가락이 많아 경쾌한 느낌을 준다. 성동리 약사사로 약사여래 입상을 만나러 간다. 지장보살의 헤어스타일을 흉내낸 대머리 석불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목도 짧다. 아마도 자신이 태어난 고려 후기의 억압된 사회상에 감염된 탓이리라.

남산공원의 석장승을 일별한 후 청계면 청천리마을 앞 팽나무 · 개서어나무숲(천연기념물 제82호)으로 발길을 옮긴다. 90여 그루의 고목이 국도변에 늘어서 줄숲을 이룬 모습이 장관이다. 나무를 훼손하면 액이 낀다는 금기 때문에 500년을 지켜 내려올 수 있었던 숲이다.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을 감싸던 숲은 이젠 마을 앞을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음을 막는 방음숲이 돼 있다. 줄나무숲은 한 채의 무설법전(無說法殿)이다. 아무도 자율이나 조화를 역설하지 않지만 나무들은 제각기 적당한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전체에 녹아드는 법을 안다. 숲이 아름다운 건 이렇듯 전체와 개체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 아닐는지.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


아이들과 신나는 갯벌체험…무안낙지골목뜨끈한연포탕도

◆ 체험거리

일로농협은 일로 백련협동화단지와 회산백련지 일원에서 단체로 신청받아 연중 수시로 연근 캐기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로농협(061-285-8549)으로 신청하면 된다. 참가비는 없다. 해제면 송계1리 송계마을에선 갯벌체험 신청을 받고 있다. 갯벌체험은 갯벌의 감촉을 피부로 느끼며 다양한 형태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송계어촌체험 관광안내소(061-454-8737)나 홈페이지(songgye.muan.go.kr)로 신청하면 된다.


◆ 맛집

무안에는 세발낙지,명산 장어구이,양파 한우고기,돼지짚불구이,도리포 숭어회라는 5미(味)가 있다. 무안지역의 갯벌에는 게르마늄이 많이 함유돼 있어 생선회의 맛이 각별하다고 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9,10월이면 배 안에 밥풀과 같은 알이 생기는데 즐겨 먹을 수 있으며 겨울에는 틀어막혀 구멍 속에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그 어미를 먹는다. 빛깔은 하얗고 맛은 감미로우며 회나 국 및 포에 좋다. 이를 먹으면 사람의 원기를 북돋는다'고 낙지에 대해 쓰고 있다.

무안읍 공용터미널 뒷골목은 낙지골목으로 유명하다. 무안 낙지 골목 동산정(061-452-9906)은 낙지볶음,물회,연포탕,낙지죽 등 낙지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낙지비빔밥 1만원,낙지볶음 5만원(대),3만5000원(소).낙지회 3만5000원,낙지구이 한 마리 1만원,연포탕 3만~6만원.